사이버가수의 귀환? K팝에까지 도전장 내민 가상인간

입력
2022.04.13 04:30
13면
가상인간 '한유아', 12일 첫 신곡 음원 발표
소비자 기호에 따라 가상인간 구현 가능
가수부터 웹드라마 및 예능까지 진출 영역도 다양
'진정한 가상인간'으로의 재탄생엔 걸림돌도 많아

웬만한 연예인의 인기를 뺨친다. 활동 영역부터 상당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내 영향력을 갖춘 인플루언서는 기본이고 가수와 인터넷(웹) 드라마 및 예능 출연까지 넘나든다. 가상인간(디지털 휴먼)이 현실 속의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보여준 왕성한 활동이다.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가상인간의 현실세계 진입도 갈수록 늘어나는 분위기다.

국내 대형 게임사 스마일게이트가 특수효과 분야에 특화된 스튜디오 자이언트스텝과 공동개발한 가상인간 '한유아'는 12일 자신의 첫 음원인 '아이 라이크 댓(I like that)'을 전 음원 사이트에 동시 공개하면서 버추얼 아티스트로서의 첫발을 뗐다. 지난 2월 YG케이플러스와 전속 계약을 맺은 지 2개월 만이다. 우아하면서 강렬한 멜로디가 특징인 신스 사운드의 댄스 음악이다. 대형 기획사인 CJ ENM이 제작 총괄을 맡았고, 마마무의 '힙', 화사의 '멍청이' 등의 히트곡을 탄생시킨 박우상 프로듀서가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가상인간의 음원 공개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에서 제작한 가상인간 '로지'는 싱글 앨범 '후 엠 아이'를 발표한 바 있다. SNS인 인스타그램에서만 12만 명 이상의 팔로어(구독자)를 보유한 로지는 지난해에만 100건이 넘는 협찬과 광고로 15억 원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LG전자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소비자가전박람회 'CES 2022'에서 첫 공개한 가상인간 '김래아' 또한 매니지먼트사인 미스틱스토리와 함께 앨범 작업에 열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입맛에 따라 '인격' 부여... 소비자 반응↑

가상인간이란 현실에는 없는, 디지털 세계에만 존재하는 가상 인물을 뜻한다. 3차원(3D) 그래픽, 모션캡처, 딥러닝, 인공지능(AI) 챗봇 기술 등이 결합돼 만들어진다. 외형과 목소리는 실제 인간 모델의 얼굴과 표정, 목소리 관련 빅데이터를 수집해 딥러닝을 통해 콘셉트나 대중의 선호도에 맞게 구현한다. 젊은 층 공략을 목표로 탄생한 로지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에서 선호하는 얼굴 데이터 중심으로 설계, 넓은 미간에 마른 체형이 특징이다. 한유아의 음원은 다양한 연령대의 수백 명 데이터를 취합해 AI로 합성, 콘셉트인 '신비로운 소녀'의 맞춤형 목소리로 재탄생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세상에 나온 가상인간의 인기는 개발사 입맛에 따라 가상의 인격(페르소나)을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트렌드에 발맞춰 소비자에게 선호된 '새로운 인간'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무엇보다 스케줄 문제나 사생활과 관련된 리스크도 없다. 태생적으로 구설수에 오를 일이 없는 셈이다. 스마일게이트 관계자는 "데뷔곡 발매를 시작으로 가수로서 본격적인 행보를 펼칠 예정"이라며 "방송과 유튜브, 공연, 광고 등 다양한 영역에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전했다.

아직까진 대역 모델에 얼굴만 합성... 실시간 대화 '메타휴먼'은 언제쯤

하지만 디지털 휴먼을 진정한 '가상인간'으로 부를 수 있기까진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현재까지는 가상인간 관련 기술 중에서는 '시각적 효과'만 집중적으로 개발, 부각됐다. 공식 사진이나 뮤직비디오의 경우에도 얼굴만 디지털 기술을 통해 만든 뒤, 먼저 촬영한 사람 모델에 입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굴을 제외한 몸은 대부분 '대역'이다. 실존 인물의 얼굴을 덧씌우는 딥페이크 기술의 연장선이다.

가상인간이 올리는 SNS 게시물이나 인터뷰 내용 등도 담당 매니지먼트사나 홍보팀이 미리 정한 가상인간의 콘셉트에 따라 작성되는 게 일반적이다. 알 파치노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시몬'에서처럼 제작자가 화면 뒤에서 가상인간의 인격을 연기하는 방식이다. 1998년에 첫선을 보였던 사이버가수 '아담'에 비해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지만, '가상(AI)' 인간으로 지칭하기에는 부족한 게 사실이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가상인간은 하나의 콘텐츠, 캐릭터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메타버스 생태계가 확대되고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 사람이 묻는 말에 스스로 대답하는 '메타휴먼'도 속속 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승엽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