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모공과 주름을 보고 싶다

입력
2022.04.1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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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대형 마트에 갈 때마다 전자제품 코너를 지나치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고화질의 텔레비전 모니터를 보면 그 선명함에 압도되어 버리곤 한다. 크고, 얇은 모니터에 눈길을 빼앗겨 화면을 바라보면 꼭 그 화면 안에는 다채로운 색감의 자연 풍광이나 화려한 깃털의 새가 등장하며, 이 텔레비전이 얼마만큼의 색감과 선명도를 구현해내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그 화면에 넋을 놓고 있다가 가격표를 보면서 0이 몇 개나 붙은 건지 세어 보다가 '8K 해상도 지원' 이런 문구를 확인한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닐 것이다.

흔히 4K는 UHD(Ultra High Definition), 아주 선명한 화질의 동의어로 통용된다. 8K라면 대체 얼마나 선명한 화질인 걸까 생각하겠지만 보통 영상 카메라로 촬영하는 해상도는 4K인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현재 우리가 보는 해상도는 4K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4K 해상도는 영화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며, 디지털로도 필름 화면을 비슷하게 구현해내기 위해 빠르게 발전했다.

4K 즉 UHD로 촬영되거나 송출되는 화면이 지극히 당연해진 요즘, 문득 우리가 보고 있는 드라마의 화질이 정말 더 좋아진 것이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화질이 좋아지면서 모공이나 잔주름, 표정 주름들이 더 부각되며 배우들도 고화질 화면에 노출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게 되었다. 당연하다. 게다가 재방송과 OTT 플랫폼으로 지속해서 노출된다고 생각하면 배우로서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일일 것이다. 당장 나만 하더라도 내 모공이나 피부 트러블이 화면에 고스란히 나온다고 떠올리면 생각만으로도 무서운 일이니 말이다.

특히나 주인공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야 하는 멜로드라마 장르에서는 배우의 피부 톤을 보정하고, 잡티를 없애는 작업을 하는 일들이 이제는 계약서 안에도 조항으로 삽입되어 있기도 할 정도로 만연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는 한편 시청자로서 아쉬운 점은 피부 톤을 보정하며 배우의 미세한 표정이나 잔주름들 얼굴 근육을 잘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름답게 비춰지는 것이 최우선 순위다 보니 배역에 온전히 몰입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배우의 얼굴에서 전해지는 생활감도 필연적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텔레비전의 화면이 4K를 지원하면서 우리는 배우의 얼굴을 이전보다 더 뿌옇고 흐릿하게 보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사한 화면과 피부 톤이 어울리는 작품들도 있을 테지만 이러한 영상물들만 노출되다 보면 어느 순간 텔레비전의 화면에서는 생활감을 거세한 아름다운 부분만 보여주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러다 보면 이야기도 그에 맞는 아름다운 이야기들만 다뤄지는 것이 아닐까 염려되기도 하다.

최근 OTT 플랫폼을 통해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주연으로 출연한 중년 여성의 삶을 다룬 '올리브 키터리지'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고스란히 드러난 그의 주름과 잡티가 더할 나위 없이 그 배역에 녹아든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곧장 사랑에 빠졌다.

나는 나이 들어감을 그리고 생활감도 연기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배우의 얼굴을 보고 싶다. 그렇다면 나도 나를 충분히 사랑할 수 있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그 배우에게 그 작품에 열렬한 사랑을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배우의 생활감이 묻어 있는 얼굴을, 연기를 그리고 그들이 펼치는 연기가 담긴 작품들을 더 많이 보고 싶다.


윤단비 영화감독·시나리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