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문신 심노승은 16세에 동갑내기 아내와 혼인한다. 이후 1남 3녀를 두었으나 둘째 딸을 제외하고 모두 잃었고, 1792년에는 4살 된 셋째 딸과 아내를 함께 잃는 비극을 맞는다. 당시 심노승은 파주에 새 집을 지은 참이었는데, 아내가 없는 집은 ‘새 무덤’에 불과할 뿐이었다. 심노승은 집 가까이에 아내 무덤을 쓰고 2년 동안 ‘미안기’를 비롯해 아내를 그린 26편의 시와 23편의 글을 남긴다. 눈썹을 펴지 못했다는 것은 기쁜 일이 없었다는 뜻으로, 살아생전 아내를 기쁘게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을 담고 있다.
한문학자 박동욱 한양대 교수의 '눈썹을 펴지 못하고'는 심노승을 비롯해 정약용, 채제공, 유희춘 등 조선 사대부 13명이 아내를 잃고 그 죽음을 슬퍼하며 쓴 ‘도망시(悼亡時)’를 모은 책이다. 앞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편지’, ‘너보다 예쁜 꽃은 없단다’ 등의 책을 통해 조선시대 부모 자식간에 대해 연구한 저자가 이번에는 조선시대 부부간의 애틋함을 들여다본다. 도망시를 비롯해 아내의 영전에 올리는 제문, 묘지에 죽은 이의 덕을 새긴 묘지명, 편지 등 다양한 형태의 애도문을 통해서다.
연애는커녕 초야가 돼서야 서로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는 이야기가 흔히 전해지는 조선시대에도 부부는 서로를 애틋해했다. 물론 유배지에서 첩을 두기도 하고, 가정사는 아내에게 모두 맡겨 두는 등 당시 시대상으로 인한 한계도 보인다. 그럴수록 아내를 잃은 뒤의 후회는 더 깊다. 남편들은 끊임없이 아내의 꿈을 꾸고, 죽은 지 수십 년이 흘러도 아내를 잊지 못한다.
“당신은 멀리 넓은 하늘에 있으니 아득하여 알지 못하는지. 나는 혼탁한 세상에 남아 오직 아이만을 의지하고 있소(…) 날이 갈수록 날로 잊힌다더니, 옛사람들이 나를 속였소. 오래될수록 더욱 새로워지니 어찌 감당할지요. 훨훨 짝지어 나는 제비가 내 마음 무너지게 하는구려. 저승과 이승이 한 이치라면 나처럼 슬퍼함이 없을 수 있겠소.”(채팽윤 ‘그대 없는 빈집에서 눈물만’)
“생각하니 그대와 이별한 지 벌써 8년이 되었소. 당신의 모습은 점점 멀어져가는데, 시절의 경치는 예전과 똑같아 새벽 서리는 뜰에 가득하고 국화는 시들었으며 뽕나무 잎은 떨어지는구려. 아! 나는 점점 쇠해가는데 누구와 더불어 늙어갈 수 있겠소?”(김진규 ‘바다 건너 유배지를 찾아온 아내’)
박 교수는 “패했을 때 가장 면목이 없는 사람도, 이를 딛고 다시 일어설 기운을 주는 사람도, 마침내 성공했을 때 기뻐해줄 사람도 모두 가족“이라며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부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시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