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의 이유 1. “국민을 편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달 10일 대선 승리를 확정하고 이같이 말했다.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고도 했다.
#통합의 이유 2. 국민이 윤 당선인에게 기대하는 바도 ‘큰 정치’다. 이달 1, 2일 TBSㆍ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여론조사에서 "윤 당선인이 대통령으로서 국정 운영을 잘할 것"이라고 답한 사람 중 39.5%가 "통합 및 협치를 잘할 것 같아서"를 꼽았다. "대선 공약이 훌륭해서"와 "윤 당선인의 자질과 역량이 뛰어나서"는 각각 26.4%, 17.4%였다.
#통합의 이유 3. 열렬한 정권 교체 민심을 받아안고도 윤 당선인은 압승하지 못했다. 득표율 0.73%포인트 차이로 대통령에 오르게 됐다. 그를 찍지 않은 국민의 마음을 돌려세워야 한다는 의미다. 더구나 여소야대 국회를 상대해야 한다.
그러나 윤 당선인은 통합과 협치의 리더십을 충분히 보여주지 않았다. 보수 정당 대통령 당선인 중에 최초로 제주 4ㆍ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하는 등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통합을 브랜드로 만들진 못했다. 초내 내각 인선에선 통합·균형·다양성의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 활발한 ‘식사 정치’를 하고 있지만 진영, 세대, 계층을 활발하게 넘나들진 않는다.
정치의 출발점은 인사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은 정적은 물론이고 야당 인사들까지 폭넓게 내각 요직에 임명했다. 링컨 내각은 ‘팀 오브 라이벌스(Team of Rivals)’라고 불렸다. 링컨 신봉자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맞수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기용했고, 전임 부시 행정부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을 2년간 유임시켰다. 이후에도 공화당 인사들을 중용해 박수 받았다.
윤 당선인 측도 대선 기간 ‘팀 오브 라이벌스’ 구축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새 정부 인재 풀(pool)을 최대화하고, 통합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 대선 직후 김부겸 현 국무총리를 유임시킬 거라는 얘기가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론 달랐다. '대통령직인수위 인선 → 국무총리 지명 → 1차 장관 지명(8명)'에 이르기까지, 윤 당선인과 이런저런 인연이 있는 인사들이 주로 기용됐다.
“일부 장관 자리는 민주당 추천을 받거나 상의하는 식으로 지명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든다”는 얘기가 국민의힘에서도 나올 정도다.
윤 당선인의 정치 행보에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은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다. “혼밥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지켜지고 있지만, 최근엔 주로 국민의힘 의원들과 만났다. 민주당과의 공개 접촉은 지난달 25일 박홍근 원내대표에게 "식사 한번 모시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게 사실상 전부다.
인수위가 내놓는 정책 메시지에도 통합이 빠져 있다. 부동산ㆍ탈원전ㆍ소득주도성장 등 문재인 정부 정책 ‘뒤집기’만 강조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윤 당선인은 "현 정부의 잘한 일은 계승하겠다"고 했지만, 구체화되진 않고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현 정부의 노동ㆍ복지 정책의 방향에 공감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며 “인사와 정책이 지나치게 시장주의나 현 정부와의 차별화만 강조되고 있다”고 했다.
“곧장 지방선거가 이어지며 대선이 연장되고 있다”는 이준한 인천대 교수의 말처럼, 6월 1일 열리는 지방선거는 윤 당선인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지방선거에서 낙승하지 못하면 국정운영의 동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채 정권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윤 당선인은 ‘통치’가 아닌 ‘선거’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측면이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과 만나며 당심을 잡고,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 가능성이 큰 무난한 인사를 지명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만나는 것 모두 선거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의미다.
문제는 '골든 타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난 한 달간 윤 당선인이 만든 긍정적 이슈는 별로 없다”며 “이대로 가다간 지지 기반이 서서히 훼손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