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은 "일하고, 사랑하고, 끝끝내 살아간다"

입력
2022.04.11 04:30
21면
출간 2주 만에 이례적 1만 부 판매 시집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 최지인 시인

"돈 버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 있다고" 믿었던 청년은 "갓 서른을 넘겼을 뿐인데 다 늙어버린 것 같다"(‘이번 여름의 일’) 그러나 "서른 내내 가난했고/어쩔 수 없는 미래에 뒤척"이면서도('보드빌') 그는 "일하고/일하고/사랑을 하고/끝끝내/살아간다"('컨베이어') 그리고 "우리는 죽지 말자 제발/살아있자"('제대로 살고 있음')고 호소한다.

지난달 18일 출간된 최지인(32) 시인의 시집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는 지금 여기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청년 세대의 고단한 삶을 생생하게 담아낸다. 절박하고도 솔직한 목소리에 독자들이 응답했다. 시집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출간 2주 만에 1만 부가 팔린 것이다.

여기엔 오디션 프로그램 '싱어게인' 우승자인 가수 이승윤의 추천사도 한몫을 했다. 이승윤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으나 함께 꿈을 꾸던" 때를 떠올리며, "그동안 수도 없이 쓰이고 버려진 시들 가운데에서 끝끝내 완성된 이번 시집에 경의를 표한다"고 덧붙인다. 8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최 시인은 "승윤씨 추천사 덕분에 과분한 관심을 받게 됐다"고 멋쩍어했다.

최 시인은 이승윤을 비롯해 싱어송라이터, 에세이 작가, 기획자 등과 함께 언룩(unlook)이라는 창작집단을 꾸리고 있다.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을 예술로 기억하자'는 비전을 공유하는 모임이다.

"승윤씨랑은 2018년 한 문학 기념 행사에서 처음 만났어요. 시를 매개로 함께 작업을 했는데, 그때 승윤씨한테 첫눈에 반했어요.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음악을 잘하는 뮤지션이 있다니 싶었죠. 이후에도 승윤씨와 제가 쓴 시를 매개로 협업을 하기도 하면서 친구가 됐고요. 서로에게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는 친구가 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승윤씨랑은 그게 가능했어요. 예술로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자는 의도는 없었는데, 그럼에도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유명해지거나 돈을 벌자는 의도'가 없는 이들에게, 예술이 되는 것은 고상한 무엇이 아니라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일해야"('문제와 문제의 문제')하는 일상과 "인간은 왜 죽을힘을 다해 일하는 걸까"('살과 뼈')라는 질문이다. "월세를 못 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적은 월급을 받고도 야근하고 부당한 요구에도 침묵"하고 "집에 돌아오면 드라마를 몰아 보며 캔맥주를 홀짝이다 잠이 드는 생활"('언젠가 우리는 이 원룸을 떠날 테고')이다. 시집의 제목에 '일하고'가 두 번이나 들어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물다섯 살 때 출판사 편집자 일을 시작해서 여섯 개의 직장을 옮겨 다녔어요. 오만하지만, 직접 일을 해 보기 전에는 부당한 요구를 참아가며 일하는 사람들이 바보 같다고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세상의 많은 것들을 이해하게 되더군요. 저 스스로 노동하면서 느끼는 것들을 계속 시를 통해 질문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가운데서도 시인은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에게 사랑은 "사람의 체온, 혼자가 아니다, 쓸모없지 않다"('포스트 포스트 펑크')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랑에는 "아픈 등을 주무르면 거기 말고 하며 뒤척이는 늦은 밤"('기다리는 사람')처럼 궁핍과 고단함이 배어 있다. 최 시인은 "자격 없을 때, 서로가 가진 것이 없을 때 오히려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며 "때로 사랑이 나를 파괴하기도 하지만, 결국 사랑이 나를 일하게 하고 살게 한다"고 했다.

최 시인은 얼마 전 회사를 그만뒀다. 시를 쓰기 위해서다. 정작 그는 "(기사에서) 저를 너무 좋은 사람으로 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시가, 예술이 다른 무엇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본으로 치환되지 않을 뿐 다른 모든 일과같아요. 아등바등 사는 삶을 저라도 기억하기 위한 작업일 뿐이죠. 다만 저와 비슷한 처지의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싶어요. 지금 현실이 비루할지라도 죽지 말고 살아서 다음을 도모하자고요. 우리 삶의 기억이 중요한 것이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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