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20년 절친' 베를루스코니 "러, 민간인 학살 책임 부인 못해"

입력
2022.04.10 08:30
FI 전당대회서 공개적 실망감 드러내
"푸틴이 우크라 침공 모든 책임 져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85) 전 이탈리아 총리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가 푸틴 대통령과 20년간 친구 관계를 유지하며 휴가를 함께 보냈을 정도로 ‘끈끈한 사이’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 비판이라는 평가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이날 자신이 이끄는 중도 우파 전진이탈리아(FI) 전당대회 연설에서 “푸틴 대통령의 행동에 심히 실망했다는 점을 숨길 수도 없고 숨기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년 전 알게 된 그는 내 눈엔 항상 민주주의와 평화를 따르는 사람이었다”며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크라이나 부차와 다른 곳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 참상과 실제 전쟁 범죄에 대해 러시아는 그 책임을 부인할 수 없다”며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를 유럽으로 끌어오는 대신 중국 품으로 던진 것으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줄곧 말을 아꼈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공식 석상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한 발언을 한 것은 처음이다. 특히 그가 개인적 친분을 자랑하던 푸틴 대통령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예상 밖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001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처음 조우한 두 사람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이탈리아 사르데냐섬에 있는 각자의 별장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등 친밀한 관계를 이어왔다.

2011년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탈리아 재정 위기의 파고 속에 사임한 뒤에도 수시로 회동하며 ‘브로맨스(남자들 사이의 진한 우정)’를 이어왔다. 푸틴 대통령은 총리 시절인 2011년 서방 정치 전문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유럽 최고의 정치인”이라고 치켜세웠고,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역시 2015년 푸틴 대통령을 두고 “의심의 여지 없이 전 세계 지도자 중 1등”이라고 찬사를 보내는가 하면 자신의 동생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이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에게 러시아 시민권과 함께 러시아 경제 장관 자리를 제안하기도 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건설ㆍ미디어 그룹을 거느린 재벌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해 1990∼2000년대 세 차례 총리를 지내는 등 이탈리아 정계의 한 시대를 주름잡은 인물이다. 9년 2개월의 전후 최장기 총리 재임 기록도 갖고 있다. 그는 올해 1월 대통령 선거에 도전장을 냈으나 좌파 진영의 지지를 얻지 못해 출마를 중도 포기했다.

허경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