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 북부 컴브리아 주의 이든 강 계곡에 자리한 펜리스는 외지인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산간 소도시였다. 그나마 경사가 완만한 남쪽 산등성이를 따라 스코틀랜드 국경으로 넘어가는 여행자나 소몰이꾼들만이 드문드문 들러 큰 도시에서 물고 온 진기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이 마을 사람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작은 창구였다.
1597년 9월 22일, 하루 묵어가겠다며 펜리스에 찾아든 앤드루 호그슨이라는 낯선 사내가 가던 길을 다시 떠나지 못한 채 앓다 죽었다. 검게 변한 호그슨의 시신을 매장한 지 스무날이 지났을 즈음, 이 집 저 집에서 통곡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역병이었다. 열이 오르고 온몸에 피고름이 생긴 사람들은 끔찍한 통증을 이기지 못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혹은 섬망 상태에서 허우적거리다 죽어갔다. 죽음에는 가속도가 붙어 역병이 물러나기까지 15개월 동안 펜리스의 전체 인구 1,350명 중 640명이 목숨을 잃었다. 병이 도는 동안 펜리스 주민들은 다른 마을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철저히 고립시켰다. 하지만 산등성이를 훌쩍 넘어 칼라일과 캔들로 번진 역병은 서북쪽으로 진군을 계속해 스코틀랜드 최대 상업 도시 덤프리스의 일상을 한순간에 마비시켰다.
놀랍게도 펜리스와 칼라일 사람들은 자신들을 덮친 엄청난 불행을 기록으로 꼼꼼히 남겼다. 애지중지 키우던 여섯 살 외동딸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던 어느 밤부터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엿새 만에 숨을 거두기까지를 시간별 증상별로 기록한 일지, 교구 책임자들이 마을 환자들을 돌보고 장례 치르고 매장한 기록, 발병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증상을 관찰한 일기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쌓인 기록들을 근거로 훗날의 질병 전문가들은 호그슨이 펜리스에 들여온 질병이 지난 세기 유럽 대륙을 휩쓸었던 흑사병과 동일한 전염병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아가 이런 기록 유산들은 향후 영국이 공중보건과 역학(疫學)이라는 학문 분야를 개척하고 선도하는 데도 적잖은 역할을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졌을 때 팬데믹이 이만큼 오래 가리라고 예상한 전문가는 많지 않았다. 길어야 일년 남짓? 백신 접종과 함께 종식되거나 비관적일 경우 메르스 같은 풍토병으로 남을 거라고 봤다. 그 사이 다섯 차례나 변이를 거듭한 이 바이러스는 어떻게든 인간과 더불어 살아남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지인들의 코로나 확진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던 지난 주말, 목구멍에서 이상징후가 감지됐다. ‘홈캉스라 여기면 되지 뭐.’ 두려운 마음을 다독이며 SNS를 검색했다. 먼저 경험한 사람들의 체험담은 크게 네 가지로 추려졌다. 1, 증상이 나타나는 즉시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할 것. 2, 매일 두세 번 목젖까지 닿도록 가글할 것. 3, 처방받은 약을 끝까지 다 먹을 것. 4, 절대 만만한 놈이 아님을 명심할 것. 면도날로 목구멍을 훑는 듯 끔찍하던 몇 밤을 맨정신으로 견뎌낼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먼저 앓고 난 이들의 섬세한 조언과 위로 덕이었다.
다시 아침, 일곱 가지 알약을 입속으로 넣어 삼키며 생각했다. 이렇게 우리는 코로나19 감염병의 역학적·경험적 증거로서 사는구나. 생존이란 건 바이러스에게도 인간에게도 이만큼 치열한 일이구나. 창문을 여니 매화 향은 사라지고, 벚나무들이 무리 지어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