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용 김천예술고 교장 "제자 통해 트로트의 진가 알게됐죠"

입력
2022.04.09 10:00
김호중 트로트 프로그램 출연 소식 접하고 처음엔 당황
제자 통해 트로트의 음악적 치유 기능 새롭게 발견 
"호중이처럼 클래식, 가요를 모두 잘하는 가수는 드물어"



'질풍노도 시기의 반항아'를 품에 안아주고 음악의 길을 걷게 해주어 김천 예술고 서수용(61) 교장은 성악가 출신 트로트 가수 김호중을 '청출어람(靑出於藍)'(쪽에서 나온 푸른색이 쪽보다 더 푸르다)케 한 스승이다. 그는 방황하던 고교생 김호중의 심신을 품어주었고 소질도 팽개치고 자포자기에 빠져있던 반항아를 다시 음악의 길로 이끌었다.

김호중이 독특한 음색과 영역을 과시하며 인기 트로트 가수로 활동할 수 있게 된 뿌리는 서수용 교장의 보살핌이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김호중에게 그는 학문만 가르친 교사를 넘어 인간이 되게 한 '참스승'인 셈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김호중이 경북예술고 2학년초이던 2008년 5월 시작됐다. 당시 김천 예술고 음악 교사이던 서 교장은 재능은 뛰어나나 집안 사정 때문에 음악을 포기하고 엇나간 길을 걷다 퇴학위기에 처해있는 김호중군을 소개 받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서 교장은 김호중을 만나 그의 소질을 확인하고 김천 예술고 2학년으로 전학시켰다. 서 교장의 기대대로 김호중은 뛰어난 자질을 발휘, 한양대 음대 4년 전면 장학생으로 진학한 뒤 독일로 유학까지 가게 됐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외로움을 많이 타던 그였기에 유학 생활이 순조롭게 지속되지는 못했다. 결국 조기 귀국하게 되었고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재정적 문제로 결혼식 축가나 행사 가수로 근근히 연명해갈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어려운 가운데 김호중이 예전처럼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한길로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서 교장의 관심과 보살핌 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 인생의 돌파구가 열린 것은 2020년. TV조선이 야심차게 마련한 음악 경연 프로 '미스터 트롯' 덕이었다. 그해 . 서 교장은 밤늦게 걸려온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 저 김호중입니다. 트로트 프로그램에 출전하려고 합니다."

갑작스런 알림이자 일방통보인 셈이었다. 지금에야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그때는 정말 당황했었다"고 서 교장은 당시를 돌아보았다. '나에게서 성악을 배웠던 제자가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다!'. 그때까지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 없었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결연한 음성을 통해 미스터 트롯 출전을 이미 결심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충격적인 소식이었지만 학교 다닐 때부터 모창이나 성대모사에 재능을 보였던 터라 제자의 성공을 바라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제자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트로트

이후 서 교장은 미스터 트롯를 기도하며 지켜보았다. 제자의 외도(?) 덕에 트로트의 새로운 면모도 발견하게 되었다. 김호중이 TV 방송을 탄 후 스타의 스승이라는 이유로 많은 이들의 사연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 가운데는 인생의 동반자를 먼저 떠나보낸 분, 자식과 사별 후 상처가 아물지 않아 힘들어 하는 이들의 사연을 접할 수 있었다. 이런 분들이 트로트, 그중에서도 김호중의 노래로 위로받고 '슬픔을 씻김받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오곤 한다는 것. 음악의 순기능에는 치유의 기능이 있다. "그전까지는 음악 속 치유의 기능이라면 클래식과 찬양, 복음 음악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서 교장은 믿었었다. "음악 치유가 지금까지는 바흐, 모차르트와 같은 클래식에서만 존재한다고 봤는데 호중이를 통해 트로트에도 정서적 감동을 넘어 영혼을 아우르는 음악의 순기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지금은 트로트라는 장르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한다.

서 교장이 분석하는 김호중의 매력

김호중 음악에는 그만의 울림이 있다. 세계적인 성악가의 경우 유독 비강쪽 울림이 뛰어난 아티스트가 많다. 김호중이 그렇다. 그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감동과 치유는 물론 삶의 활력소가 된다는 이들이 많다. 김호중만의 특화되고 차별화된 매력을 들자면 '스펙트럼'이라고 본다. 다른 가수들과 비교해도 독보적인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성악을 했던 사람이 발라드를 할 때면 성악적인 끼를 버리기 어렵다. 그만큼 성악의 테크닉이 몸에 배어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김호중은 마치, 음악 장르에 따라 최적화된 성대를 갈아 끼워가며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비유를 하자면 자동차에 타이어를 용도에 따라 교체해서 사용하는 것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아리아를 부를 때, 팝을 부를 때, 트로트를 부를 때 그때 그때 상황에 맞는 성대를 교체해 가며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여겨진다. 노래를 잘 하는 가수는 많지만, 다수의 장르에서 수준 높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가수는 많지 않다. 서 교장은 "호중이 매력의 원동력은 클래식으로 다져진 탄탄한 음악적 기본기와 비강쪽이 발달된 울림, 그리고 그만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스펙트럼과 스토리텔링이 어울려 지금의 김호중 신드롬이 나온 것 같다"고 분석했다.

예술가를 보는 사회적 시각 변화의 필요성

서 교장은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아이는 선택받고 축복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본다. 호중이 역시 한때 그런 적이 있었다. "원수에게 복수를 하고 싶으면 그의 자식에게 예체능을 하게 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체능의 세계는 좁고 힘들다. 우리 주변에 공부 잘한다는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의사, 판사, 검사를 목표로 한다. 이러한 직군에서 일을 하면 세간에서는 성공했다고들 평가한다. 물론 부유하게 살며 사회 기여도도 높은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나라의 품격을 높이고 국민 다수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데 예체능만큼 기여하는 것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서 교장은 강조한다. 제자 김호중의 사례에서 보듯 우리나라는 예술적 재능을 지닌 영재들 지원 시스템이 너무 부족한 점이 아쉽다고 여긴다. 시스템이 따라주지 못해 재능있는 아이들이 부모의 경제 능력 때문에 재능을 꽃 피우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는 것이다. "한동안 우리나라는 먹고 사는데 급급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대한민국은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고 세계 리더 국가의 반열에도 올라섰으므로 국격에 걸맞는 예술에 대한 투자를 과감히 해 나가야 할 시점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예체능에 대한 시각과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그래야 투자가 달라진다"며 "그래야만 재능 있는 우리 아이들이 마음껏 재능을 발휘할 수 있고 국민들의 여가 선용과 삶의 질이 더욱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의 소견을 말했다.

서 교장의 남은 정년 1년과 그 후의 꿈

평생 교육자로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살아 왔다. 하지만 교장이 되고부터 접한 행정적 부분의 업무 처리, 소신 있게 추진한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사람들이 보고 좋아해 줄 때 예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행복감이 일었다. 운이 좋아 은퇴 이후 기회가 된다면 행정적인 분야에서 봉사하고 싶다.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김천을 보다 문화 예술적이고 밝은 이미지의 도시가 될 수 있도록 행정적 측면에서 봉사하는 것이 제2의 인생 목표이자 꿈이다. 성악을 전공했기에 일반 공무원과는 조금 다른 시각, 색다른 아이디어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로의 장점을 공유하며 행정 업무를 추진한다면 다른 차원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호중이라는 스타 탄생으로 조용하고 점잖기로 유명한 김천이 조금은 젊어지고, 활력 넘치는 도시로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지금 김천은 김호중의 군 제대 날짜에 맞추어 김호중 모교인 김천 예술고등학교 관내에 김호중 흔적 찾기와 학교를 방문해 주는 방문객을 위해 김호중 쉼터, 김호중 정자, 김호중 그림벽화 조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김천 예고와 인근 연화지를 잇는 김호중 거리 조성 사업에도 힘을 쏟고 있다. 김호중 거리가 조성되는 연화지는 매년 봄이면 만개한 벚꽃들로, 가을이면 수많은 연꽃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제 그 중심에 있는 김호중의 뒤편에 서 교장이 말없이 그리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고 있다.

서 교장은 영남대 성악과와 독일 아헨 국립음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김천 예술고 교장이자 경북도 예술영재 김천 교육원 원장도 겸하고 있다. 2021년 한국 음악 협회가 주관하는 '2021년 한국 음악상'을 수상했다.




박상은 기자subutai117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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