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직 야구 사랑하네

입력
2022.04.09 04:30
19면
<5> 40돌 프로야구의 인기 하락

2일 개막한 2022 KBO리그
관중 제한 없이 갈 수 있지만 "글쎄"
국내 프로야구 관심도는 31%에 불과
'전혀 관심 없다' 응답은 44% 

일부 선수들의 음주운전·폭력·방역수칙 위반
인프라 좋지만 수년째 그대로인 응원 문화 

"미래의 야구팬 될 자녀와 함께 
응원할 수 있는 프로야구 만들어야"

편집자주

강소희 작가, 서효인 시인이 스포츠로 풀어내는 세상 이야기. 스포츠에 열광하는 두 필자의 시점에서 이 시대의 스포츠를 응원하고 지적합니다.


어쩔 수 없이 매일 출근하고 점심을 먹고 미팅도 하고 회의도 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꽤 오래 피해갔다. 함께 식사한 일행이 확진된 경우에도 나는 아니었다. 확진자 수가 60만 명에 이를 때에도 내 이름은 거기에 없었다. 그리하여 슬슬 이상한 생각에 경도되기 시작했다. 나는 선천적으로 감염이 안 되는 사람이 아닐까. 바이러스를 자체적으로 무찌르는 슈퍼 항체를 타고난 몸에 지닌 건 아닐까. 혹시 내 몸에 인류를 구원할 유전적 해결책이 있는 건 아닐까! 말할 것도 없이 아니다. 저딴 생각을 생각이랍시고 품은 것과 동시에 몸에 이상이 왔다. 목이 칼칼하고 약간 열이 났다. 당연히, 양성이었다. 나 또한 남과 다를 건 없었다.

격리 기간에는 책도 보고 생각 정리도 하고 간단한 운동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주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시간은 작정한 듯 천천히 흘렀다. 불평이나 할 일은 아니었다. 우리 중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오늘날 미증유의 바이러스는 오늘도 실제로 생명을 앗아간다. '겸허한 마음으로 몸 안의 바이러스를 인정하자' 생각하다 문득 그래도 봄은 왔고, 꽃이 필 테고, 바람은 따스해지고. 그렇다면 프로야구도 개막하지 않겠나 싶은 것이었다. 아, 그렇지. 이제 야구가 시작하는구나. 하루에 적어도 3시간은 그럭저럭 흘려보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동시에 꼭 그러해야만 하는지 고민이었다. 찾아보니 개막은 4월 2일. 올 시즌은 메이저리그(MLB)에서 대형 투수들이 복귀했고, 스타성 있는 신인 선수가 많았으며 화제의 외국인 선수도 있었다. 이제 관중도 제한 없이 야구장에 갈 수 있다고 한다. 아…… 그렇구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개막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해당 시즌에 특기할 만한 점은 모두 꿰차고 있었을 테지만, 이제는 큰 관심이 없다. 예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한때 어린이 회원이었고 야구 아니면 못 산다고 노래를 부를 때도 있었다. 선수 이름이 마킹된 공식 유니폼을 샀고, 인터넷에 접속하면 야구 커뮤니티에 먼저 들어가기도 했다. 주말 경기를 가려면 예매는 필수였고, 좋은 자리 티케팅은 언감생심. 일찌감치 동났다. 코로나 시국이 아니라 가능했겠지만, 삼삼오오 함께 야구를 보러 호프집을 찾는 경우도 잦았다. 동료나 친구를 만나면 야구 이야기를 했다. 플레이오프 기간이면 내가 응원하는 팀이 아니더라도 흥미롭게 봤다. 마스크를 끼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은 날이 있었듯 그런 날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그런 날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옛정 때문인지 격리 때문인지 개막전을 TV로 봤다. 오랜만에 관중이 있는 야구장은 보기 좋았으나 사람으로 가득 찬 풍경은 아니었다. 응원하는 팀은 지지부진했다. 몇 년 전이라면 장면 장면마다 화를 내고 기뻐하고 통탄하고 열렬했을 텐데 그날은 그저 그랬다. 지니 '지는가 보다' 했다. 이기면 '이기는가 보다' 하려나?


야구를 보다가 틈틈이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봤다. 짧게 편집된 유럽 축구, 미국프로농구(NBA), 메이저리그 등 영상이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의 명령에 따라 끝없이 재생되고 있었다. TV 속 야구는 느릿느릿하고 스마트폰 속 영상들은 빠릿빠릿했다. 경기는 3시간 넘게 이어지다 끝났다. 지지부진하던 팀이 별다른 반전 없이 졌다. 실책은 3개였던가. 대단히 멋진 장면은 없었다. 마지막 병살타는 꿈에서 본 장면 같았는데, 아마도 그때마다 졸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2022년의 야구는 이전 같지 않다. 실제로 개막전 다섯 경기 모두 만원은커녕 평균 2만 명에 미치지 못하는 관중이 입장했다.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에 따르면 '국내 프로야구에 관심이 있다'는 응답은 31%에 그쳤다. 2014년 48%에서 15%나 하락했으며 특히 20대의 선호도는 18%에 불과했다. 눈길을 끄는 결과는 세대를 통틀어 '전혀 관심 없다'는 응답이 44%에 달한다는 점이다.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도 관심이 없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관심 없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야구는 소수자의 취향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미 커질 대로 커진 프로야구 시장이 소수의 취향으로 머물며 유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프로야구의 인기 하락이 특정한 몇몇 사건에서 비롯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간단한 시술로 해결할 수 없는 병증처럼 몇 년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되다가 어떤 선을 넘어 급격하게 실체화된 것이다. 어떤 환자는 실체가 되어버린 증상 앞에서도 전과 변함없이 생활한다. 고치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이다. 해마다 들려오는 음주운전, 도박, (성)폭력 등의 개인 일탈은 기본적으로 응원과 선망의 대상이 되어야 할 선수들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 지난해 있었던 호텔 술자리와 그로 인한 리그 연기 파동은 그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스포츠의 근간을 흔드는 승부 조작은 또 어떠한가. 사례가 나올 때마다 뿌리를 뽑겠다고 하지만 잊을 만하면 대형 사고가 터진다. 팬들은 그들에게 몇 차례나 엄중한 경고를 보냈는데도 바뀌는 건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팬들에게 양질의 경기를 선보여야 할 텐데 그조차 쉽지 않은 모양이다. 볼넷과 사사구로 게임의 흐름이 결정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고급 야구는커녕 경기마다 양념처럼 등장하는 실책은 또 어떠한가. 얇아진 선수층이 문제라고는 하지만 10개 구단 시대로의 확장을 염원하고 결정한 것은 야구인 자신이다. 좋은 선수를 수급하기 위해 대학야구, 실업야구를 비롯한 아마추어 야구에 그들이 어떤 투자를 했는지 알 수 없다.

야구인은 야구의 인프라를 말하지만, 국내 스포츠 중에 야구만큼 인프라가 좋은 종목은 없다. 바뀐 인프라에서 우리만의 응원 문화는 여전하여 응원단상에서 젊은 여성은 치어리더라는 이름으로 흥을 돋우기 위해 춤을 춘다. 경기장에는 핫팬츠를 입은 여성이 선수들이 플레이한 배트를 주우러 다닌다. 경기가 끝나고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에서는 역시 여성 아나운서가 짧은 하의를 입고 높은 의자에 앉아 손에 쥔 대본으로 허벅지를 가리기 바쁘다. 십수 년째 그대로인 풍경들. 증상은 완연한데 처방은 느슨하다.

선배들이 갖은 고초 끝에 만든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저연차 선수들의 권리나 야구 인기를 위한 팬서비스 향상이 아닌 게임 업체와의 초상권 협의에 더 집중해왔음은 놀라운 일도 아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중계권을 팔면서 방송사가 만든 영상을 계약된 플랫폼 외에 공개하지 못하도록 했다. 야구를 하는 선수, 지방자치단체와 구단이 만든 경기장, 그곳을 메운 관중이 함께 만든 장면임에도 우리는 그걸 자가격리할 때 누워서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으로 볼 수 없다. 당장 인스타그램 KBO 공식 계정만 하더라도 밋밋한 카드 뉴스뿐이고, 팔로어는 공식 계정이라는 게 겸연쩍게도 7만5,000명 정도다. 반면 K리그 계정은 리그의 명장면을 짧은 클립으로 올려두었다. 프로야구에 비하면 여러모로 규모가 작거나 인기가 떨어진다고 알려진 프로축구지만 공식 계정의 팔로어만큼은 KBO의 거의 두 배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린이, 청소년 팬을 위한 캠페인이 절실하다. 그들이 커서 야구팬이 될 테니까. 그런데, 도박하고 음주운전하고 성매매하는 (일부) 선수들을 자녀와 함께 응원할 수 있을까. 프로야구의 봄은 여성 팬의 증가와 함께했다. 그러나 지금 야구 미디어가 상정하는 야구팬의 세대와 계층은 대체 어디에 있는 누구인가. 경기의 질도 향상하고 속도감도 더 높여야 할 것이다.

아직 지켜볼 일이지만 단기간에 해결될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어제도 뒷목을 여러 번 잡았다……) 기나긴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서도 결론적으로는 자가격리하는 동안에 야구를 모두 보았다. 나 같은 야구팬은 시간이 갈수록 고립되어 화석이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걱정하면서. 이제 어디서 누구에게 "어제 야구 보셨어요?" 물을 수 있나 자문하면서. 그리고 응원하는 팀의 일정을 확인했다. 여름이면 좀 편하게 경기장에 나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그렇다. 나는 고백해야겠다. 어쩔 수 없다. 도대체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 아직 야구 사랑하네. 그러니까 잘됐으면 좋겠네. 나 같은 팬들을 볼모로 잡아서라도.


서효인 시인·문학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