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과 꿀벌의 경고

입력
2022.04.07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팡팡팡 꽃망울이 터지고 있다. 봄꽃은 피는 순서(春序)가 있다. 맨 처음 매화와 산수유가 피고 살구꽃 목련 개나리 진달래로 이어진 뒤 벚꽃과 철쭉이 절정을 이룬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사실상 한꺼번에 피고, 더구나 빨리 진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로 봄이 짧아진 탓이다. 1970년대까진 개나리가 개화하고 한 달 뒤 벚꽃이 피었지만 지금은 일주일 차이도 안 난다.

□ 1년 전부터 꽃눈을 준비한 나무들은 가장 주목받을 수 있는 순간을 골라 꽃을 피운다. 그래야 꿀벌이 날아오고 새가 찾아들어 수분과 번식에 성공할 수 있다. 꿀벌과 새들도 오랫동안 꽃꿀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올해는 꿀벌 보기가 힘들다. 우리나라에서 실종된 꿀벌이 77억 마리도 넘는다고 한다. 농업진흥청은 그 이유를 해충인 진드기(응애) 피해와 이상기온에 따른 폐사로 꼽았다. 지난해 12월 일부 지역 기온이 높자 봄인 줄 착각해 벌통에서 나온 꿀벌이 기온이 뚝 떨어져 얼어 죽거나 벌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추정이다. 꿀벌이 없으면 수술 꽃가루를 암술머리로 옮기는 가루받이가 안 돼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인류 식량 자원의 30%가 꿀벌에 의해 수정된다. 생태계의 대혼란과 재앙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 꿀벌의 실종은 2006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됐다. 순식간에 개체수가 40%나 급감했다. 이러한 ‘군집 붕괴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살충제 농약과 전염병의 복합 작용으로 의심된다. 꽃꿀과 꽃가루에 남아 있는 수백 가지 농약 독성 성분들이 이를 먹은 꿀벌에게 치명적 위해를 가했다는 주장이다. 오염원 하나의 미세한 함량은 견딜 수 있지만 여러 성분들이 합성되면 그 결과는 심대하다. 체력이 떨어진 기저 질환 꿀벌들이 죽기 시작하면 서로 의지해온 꿀벌 사회 전체가 단 몇 주 만에도 무너진다는 게 마크 윈스턴 사이먼프레이저대 교수의 설명이다. 페스트와 유사하다. 우리 토종벌이 자취를 감춘 것도 2008년 전염병인 ‘낭충봉아부패병’이 퍼진 때문이다.

□ 벌은 인류와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다. 지구에서 최고의 공동체를 이뤄온 벌들이 무서운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는 건 우리에게도 심각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는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모든 건 연결돼 있다.


박일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