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오남'이 대세라고 한다. 대통령 당선인의 인수위원회 구성을 두고 나온 말이다. 위원 24명 중 과반이 서울대 출신이며, 연령대는 50대인 남성이 대다수이다. 연령, 성별, 학벌, 출신 지역 등 모든 관점에서 편향된 인사라는 지적에 대해서 인수위 측은 "각 분야 최고의 경륜과 실력이 있는 사람으로 모신"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능력과 전문성을 기준으로 선정했는데 그 결과가 '서오남(서울대 오십대 남성)'이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인수위원 24명의 경력은 능력과 전문성을 충분히 입증한다. 하지만 인사의 편향성에 대한 지적은 능력과 전문성 부족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의 대리인을 뽑는 정부 인사의 기본 방향은 권력 분점이므로 국민을 대변하는 대표성과 형평성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하는데, '서오남'은 해묵은 기득권의 권력 독점이 아니냐는 것이다. 능력과 전문성을 우선으로 하되, 서울대가 아니고, 오십대가 아니며, 남성이 아닌, 인물을 더 많이 등용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답변이 질문의 초점과는 사실상 무관한 '능력과 전문성을 우선으로 하다 보니 '서오남'이더라'로 종결되는 것은 다소 놀랍다. 질문은 '왜 인사에 형평성이 부족하냐'는 것인데, '능력과 전문성 우선'이 답변이 되고 '서오남'이 답변의 충실성을 보증하는 근거가 되다니. 정부 인사의 형평성이라는 통치 규범보다 '능력과 전문성'이라는 관료의 행정 수행 능력이 더 우선이란 말인가. 이번 인수위 인사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능력주의를 맹신하며 능력을 학벌과 동일시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차등 분배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다는 입장이다. 여기서 능력은 지능과 노력을 말한다. 부모의 재산이나 인종, 성별 등 타고난 요소가 아닌 후천적인 노력이나 재능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과거 신분제 사회의 세습보다 공정한 것은 맞다. 하지만 신분제는 오래전에 사라졌고, 현재는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돼 사회경제적 계급이 신분처럼 고착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과거 개인의 능력으로 믿었던 '학력'도 부모 능력의 반영물임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3년 새 서울대 신입생 중 고소득층 자녀 비율은 2017년 43.4%에서 2020년 62.9%로 19.5%포인트나 높아졌다. 능력주의도 과거 신분제의 세습에 대항하는 이념에서 새롭게 형성되는 사회경제적 신분을 정당화하는 이념으로 그 성격이 바뀌고 있다.
희망적인 것은 한국인의 능력주의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상당수는 '능력주의'를 '노력한 만큼 응분의 대가를 받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노력'을 투입한 노동 시간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능력주의는 학력을 능력의 지표로 특권화하는 학벌 엘리트의 기득권 유지 이념과 완전히 다르다. 능력주의는 재정의되어야 한다. 세습에 맞서는 개념으로 능력주의를 상정한다면 학력을 의미하는 지능보다 노력에 방점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 한림대를 졸업한 20대 여성이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사실 자체에 혐오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한번 기회를 줘보는 것도 거슬린다는 뜻일 거다. '서오남'의 '능력'도 따지자면 학벌주의와 남성주의를 앞세운 기회의 선점과 독점에 의지한 바 크지 않은가. 능력주의에 대한 사회적 재정의가 어떤 내용을 담든 '나눠 갖는' 능력과 '나눠 먹는' 능력을 구분하는 규범적 기준을 세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