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은 도덕과 인류애가 국제사회를 움직이지 못하는 현실을 드러낸 최근 사례다. 미국을 위시한 서구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해 전 세계의 단호한 대응을 시도했으나 절반의 성공에 그친 건 대표적이다. 명백한 국제법 위반에 대한 국제사회의 규탄은 당연해 보일지라도 유럽과 동아시아를 제외한 아프리카 중동 서남아시아는 이를 외면하거나 오히려 러시아를 두둔했다.
러시아 규탄이 당연하지 않은 전형적인 곳은 54개국이 속한 아프리카 대륙이다. 지난달 유엔 특별총회의 러시아 비난 결의안에 대한 아프리카의 투표는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결의안은 전체 193개국 가운데 141개국 찬성으로 채택됐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선 절반을 조금 넘는 28개국이 찬성하고 17개국은 기권을, 8개국은 투표를 하지 않았고 에리트레아는 반대표를 던졌다.
아프리카는 항상 비동맹이었고 따라서 전통적으로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는 게 좋은 선택으로 평가되곤 한다. 그러나 외견상 중립적 입장인 기권이나 불참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러시아에 대한 간접적 지지인 경우가 대다수다. 러시아 결의안에 대한 입장은 대체로 28대 26으로 갈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유엔대사가 이번 사태에 중립의 여지는 없다고 말한 것처럼 양분된 아프리카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러시아의 고립을 주도하는 미국과 유럽으로선 그나마 찬성이 절반을 넘은 게 다행일 정도다.
서방과의 관계에 쐐기를 박은 듯한 이런 결과는 냉전시기와 같은 전략적 분열의 양상을 띠고 있다. 세계질서와 이념, 가치는 냉전 때와 확연히 달라져 있어도 아프리카에서 대립 구도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것이다. 일례로 기권을 선택한 국가들의 논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태의 책임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東進)에 있다. 이들은 서방이 이중잣대로 러시아를 몰아붙이고 있다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두둔하고 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러시아 규탄에 기권한 국가는 물론 찬성한 국가들조차 서방 주도의 러시아 제재에 누구도 동참하지 않고 있는 점이다.
아프리카가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비난하기란 쉽지 않다. 멀리 식민지 경험을 소환하지 않더라도 아프리카에서 도덕적 논리에 따라 종종 행동하지 않은 국가는 미국과 유럽이었다. 반면에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은 소련에 대한 향수가 강하게 남아 있다. 서구 식민지 경험에 따라 아프리카 다수 국가가 냉전시기 사회주의를 수용한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짐바브웨 앙골라 모잠비크 등은 당시 소련 지원 속에서 자유를 쟁취한 사례에 속한다. 더구나 소련 유학생이나 소련의 도움을 받은 세력은 여전히 다수의 국가에서 권력층을 형성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남아공은 중립적 입장에서 평화를 촉구하며 유엔투표에선 기권을 하고, 집권 여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러시아 비판을 거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열린 러시아 대사관의 국경절 행사에 군 수뇌부가 대거 참석해 논란을 빚기까지 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남아공의 행보는 러시아에 대한 경제 의존, 냉전시기 소련의 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지지와 지원에 대한 보답이라는 데 이론이 없다.
사하라 이남의 띠 모양 국가군을 가리키는 사헬의 경우 서방에 대한 반감은 어느 지역보다 높다. 러시아 비판에 찬성한 모리타니아를 제외하면 알제리 말리 부르키나파소 기니 잠비아는 기권을, 모로코 시에라리온 토고 등은 투표에 불참했을 만큼 반 서방이다. 이들 국가의 2021년 러시아 교역은 70억 달러, 서방과는 440억 달러 규모인 것에 비춰보면 사헬 지역 국가들은 경제적 계산을 넘어선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서방의 아프리카 갈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제국주의 행태가 반감을 키웠다고 했다. 2011년 리비아 위기 때의 나토 개입 선례는 정정이 불안한 사헬 지역 국가들의 경계감을 높였고, 글로벌 대항자로서 러시아가 필요하게 됐다는 것이다. 서양의 인종주의, 제국주의를 경험한 아프리카의 반응으로선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셈이다.
결국 유엔의 러시아 결의안을 두고 28대 26으로 갈라진 것은 아직도 냉전의 그늘에 갇혀 있는 아프리카의 아픈 단면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푸틴은 소련 시절의 원조 프로그램을 재개한 것은 물론 주요 7개국(G7)보다 많은 수백억 달러의 아프리카 채무를 탕감한 바 있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적극적인 도움의 손길을 내민 쪽도 서방이 아니라 러시아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러시아산 백신을 불신할 때도 아프리카는 러시아에 10억 명 분량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푸틴이 2019년 10월 소치에서 첫 러시아-아프리카 정상회담을 개최했을 때는 7개국을 제외한 47개국의 정상 또는 장관급 인사가 참석했다.
아프리카의 복잡성을 더하는 것은 역사적 경험뿐 아니라 합리적 접근을 어렵게 하는 현실정치에도 있다. 아프리카는 동유럽·중동과 함께 세계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민주주의 위기를 경고해온 래리 다이아몬드 스탠퍼드대 교수도 아프리카를 위기 수준으로 진단하고 있다. 미국 의회가 지난 2월에 낸 ‘아프리카의 쿠데타 유행병’이란 보고서는 “2020년 이후 5개 국가에서 군사 쿠데타가 발생했다”면서 “서아프리카에선 ‘쿠데타 전염병’ 우려까지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북서부의 아프리카의 뿔 지역은 냉전 이후 최근까지 가장 폭력적이고 불안한 지역으로 꼽힌다. 이웃 국가의 반정부 조직을 경쟁하듯 지원하며 상대국 안정을 훼손하는 정책까지 쓰고 있다. 홍해의 두바이로 불리는 지부티와 소말리아는 러시아 결의안에 찬성을, 푸틴과 친밀한 관계인 에리트레아는 반대를, 에티오피아는 불참한 것도 이를 잘 드러낸다.
반 서방·반 나토 정서에도 고무적인 것은 아프리가연합(AU),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는 러시아를 규탄하고 다수 국가들이 가세한 점이다. 유엔의 러시아 결의에 찬성한 28개국은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고 서구와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런 측면에서 유엔 투표에서 가장 주목을 끈 것은 르완다였다.
1994년 5월 시사주간 타임은 르완다를 커버스토리로 다루고 “악마는 지옥에 없다. 그들은 지금 모두 르완다에 있다”는 제목을 달았다. 그보다 앞선 4월 6일 시작된 후투족에 의한 소수 투치족 학살은 100일이 안 되는 기간에 100만 명에 달했는데 이는 나치의 ‘최종 해결책’ 이래 가장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그러나 홀로코스트보다 신속하게 자행된 학살이었다. 당시 미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등 서구는 위선적이고 방관자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인종청소를 막아야 한다는 인류의 도덕률이 국제사회의 이해보다 우선하지 못한 아픈 사례였다. 그러나 비극을 겪어낸 르완다는 유엔에서 기권하지 않고 러시아 비판에 힘을 실었다.
아프리카의 변화는 젊은 세대가 서방 논리에 동조하고 서구적 가치에 익숙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나이지리아에서 약 200명을 비롯, 케냐 세네갈 남아공 알제리 모잠비크 보츠와나 출신의 젊은이 수백 명이 우크라이나 의용군을 자처한 것은 놀라운 반전이다. 미국외교협회(CFR)의 에베네저 오바다레 선임연구원은 블로그 글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나타난 서구와 아프리카의 갈등은 회복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고 낙관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푸틴에 대한 가장 아픈 비판은 케냐의 마틴 키마니 유엔대사가 유엔 안보리에서 한 연설이었다. “우크라이나 상황은 우리의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거의 모든 아프리카 국가들이 제국주의 종식으로 탄생했다. 국경선은 우리가 그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날 모든 나라의 국경을 가로지르며 깊은 연대를 나누는 동포들과 살고 있다.” 민족적 동질성이란 ‘위험한 향수’를 추구할 게 아니라 미래의 평화를 위해 국제사회 규범을 준수하라는 촉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