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다는 듯… 여권 겨냥 전방위 수사, 우연인가 충성경쟁인가

입력
2022.04.07 04:30
3면
검찰, 산업부 필두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 신호탄
경찰도 김혜경 법인카드·쪼개기 후원 수사 본격화
오래 묵은 사건 수사 대선 직후 재개하며 의도 의심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을 겨냥한 검경의 전방위 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다. 검찰이 현 정부 초반 공공기관장 교체를 둘러싼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을 고발 접수 3년 만에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하자, 경찰 또한 그간 묵혀둔 사건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수사하는 모양새다. 이재명 전 민주당 대선후보 부인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한국외식업중앙회의 민주당 의원 '쪼개기 후원' 의혹 등이 대표적이다. 정권 교체로 귀결된 대선 직후, 검경이 경쟁하듯이 여권을 겨냥한 수사에 나서면서 신속 공정해야 할 사건 수사에 '정무적 판단'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적지 않다.

앞다퉈 묵은 사건파일 꺼내든 검경

6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정부 및 민주당 측 인사가 연루된 사건들은 서울경찰청, 경기남부경찰청, 서울동부지검 등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전날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한국외식업중앙회의 서울 중구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음식점 영업자를 회원으로 둔 국내 최대 민간직능단체인 외식업중앙회는 2014년 전국 지회에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이름과 후원회 계좌번호를 적은 메일을 발송, 개별 회원 명의로 여당 의원들을 편법 후원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당시 후원 대상으로 거명된 정치인엔 현역 광역자치단체장, 국회 상임위원장 등 민주당 소속 정치인이 다수 포함돼 있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김혜경씨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씨는 남편인 이재명 전 대선후보가 경기지사로 재직할 때 도청 법인카드를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사팀은 김씨의 수행비서 역할을 하면서 공금 유용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전직 경기도청 사무관 A씨의 자택을 지난 3일 압수수색했고 다음날은 도청 총무과, 의무실, 조사담당관실을 압수수색하며 강제수사 범위를 넓히고 있다. 경찰은 압수한 물품을 분석하는 대로 사건관계자 소환 조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디스커버리자산운용(디스커버리) 사모펀드 환매 중단 사태 또한 경찰이 전격적으로 수사 강도를 높인 사건 중 하나다. 2,500억 원대 투자 피해를 초래한 당사자인 장하원 디스커버리 대표는 현 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장하성 주중대사의 친동생이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 2월 장하원 대표를 피의자 신분으로 두 차례 불러 조사하면서 지난해 7월 펀드 판매사 압수수색 이후 7개월 만에 수사를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장 대표는 펀드 부실화 가능성을 알고도 판매를 강행하며 투자금을 돌려 막은 혐의(특정경제범죄법상 사기, 자본시장법 위반)를 받고 있는데, 그가 2016년 자본금 25억 원으로 회사를 설립해 2019년 4월 환매 중단 사태를 맞을 때까지 펀드 판매 규모를 비약적으로 늘린 과정을 두고도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여권 수사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건 검찰의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 수사다. 서울동부지검은 지난달 25일 산업통상자원부를 전격 압수수색한 데 이어 사흘 뒤인 28일엔 산업부의 사퇴 압박으로 기관장이 물러난 곳으로 알려진 공공기관 8곳 전부를 한날 압수수색했다. 서울동부지검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일부, 국무조정실과 관련한 블랙리스트 의혹 고발 사건도 맡고 있어 수사 확대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수사에 정무적 판단 개입했나" 의구심

민주당은 여권을 겨냥한 검경 수사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수사 확대 배경에 의심을 드러내고 있다. 윤호중 비대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공정도 원칙도 없는 수사기관의 '코드 맞추기' '충성 경쟁'이 도를 넘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 대해 전광석화 같던 수사가 윤석열 당선인의 측근과 (부인) 김건희씨에 대해서는 요지부동"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은 "보복의 문제가 아니라 불법의 문제"라며 수사기관을 엄호하고 있다. 권성동 의원은 이날 경찰의 경기도청 압수수색에 대해 "범죄가 없는데도 범죄를 만드는 것이 정치 보복"이라며 "언론 보도를 통해 사실로 드러난 만큼 수사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말했다.

정치권 공방과는 별개로, 검경이 수년 전 의혹이 제기됐거나 고발장까지 접수했던 사건들을 대선이 끝난 직후에야 본격적으로 꺼내들면서 수사기관으로서 '순수성'을 의심받는 상황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컨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자체 진상조사를 거쳐 2019년 1월과 3월 관련 부처 기관장들을 무더기로 검찰에 고발했던 건이고, 외식업중앙회 사건 또한 지난해 1월 한국일보 보도를 통해 의혹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바 있다. 서울 소재 대학의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권 교체 직후 상대 진영에 대한 의혹 수사가 집중되는 경향이 반복되고 있다"며 "어느 당이 집권하느냐와 상관없이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수사 결과와 설명이 뒤따라야 국민들도 납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경은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를 고의적으로 지연하거나 다른 부분을 고려한 것은 아니다"라며 "절차에 따라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동부지검 관계자는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 수사 일정에 대해 "우선은 산업부 관련 수사에 집중하면서 압수물 분석 결과를 토대로 소환조사 일정을 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재현 기자
김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