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무기를 내려놔라."
지난달 16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모습에 '정부가 항복했다'는 내용의 가짜 음성을 입힌 딥페이크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왔다. 엉성한 합성 탓에 아무도 그 내용을 믿지 않았지만, 이후로도 우크라이나가 항복했다는 가짜뉴스는 계속해서 생성·유포되고 있다. 러시아는 왜 아무도 믿지 않는 ‘항복설’을 줄기차게 퍼뜨리는 걸까.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간) 이런 가짜뉴스의 목표가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속이려는 것이 아닌 그들이 신뢰하는 우크라이나 언론과 정부 관료들이 전하는 정보를 더 이상 믿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이라고 분석했다. 언론과 정치인들의 SNS를 해킹해 거짓 정보를 내보내면서 ‘진짜가 아닐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한다는 얘기다. 벤 리드 사이버 보안회사 맨디언트 대표는 "(가짜뉴스는) 불확실성과 혼란, 불신을 쌓는다"며 "모든 메시지의 신뢰를 갉아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항복했다는 가짜뉴스는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시작된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생성되고 있다. 2월 말엔 우크라이나 언론인과 정부 고위 관료의 페이스북에 '우크라이나가 항복했다'는 글과 함께 군인들이 숲에서 흰색 깃발을 들고 나오는 모습을 담은 영상까지 게시됐다. 우크라이나 국영 방송 '서스필네'는 지난달에만 수차례 방송 도중 "젤렌스키 대통령이 항복했다"는 자막이 송출되기도 했다. 모두 해킹을 통해 게재되거나 송출된 가짜뉴스였고,항복 영상은 연출된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해킹 공격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은 지난달 중순 자국민에게 투항을 촉구하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낸 해커를 붙잡았는데, 이 해커가 러시아군의 통신 업무를 지원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가 다수의 가짜뉴스 전파 계정들을 추적한 결과, 이 계정 소유자들이 러시아의 우방, 벨라루스 정부와 연계된 해킹 조직 '고스트라이터' 소속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지도자들은 이미 도망갔다”며 투항을 촉구하는 내용의 가짜 메시지 전송도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1일 우크라이나 보안국은 러시아의 봇(bot·특정 작업을 반복하는 프로그램) 회사를 통해 5,000여 개의 항복 유도 메시지가 보내졌다고 밝혔다. 이 메시지에는 “이번 일(전쟁)의 결과는 이미 정해졌다. 수도에서 도망친 지도자들과 민족주의를 지지하는 것을 거부하라”는 선동이 담겼다.
전문가들은 이런 메시지는 시민들을 겁주려는 의도라고 분석한다. 우크라이나에서 활동하는 가짜뉴스 전문가 올렉시 마쿠킨은 "시민들을 공포에 질리게 해 우리 정부가 항복하도록 압박하는 의도"라며 "그러나 항복할 경우 우리가 겪은 모든 고통과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되기 때문에 여전히 항복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