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도심을 남북으로 1㎞ 관통하는 중앙로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대구읍성의 상징적 거리다. 1917년 개설된 후 대구의 핵심 축이자 명물거리로 한 세기를 훌쩍 넘겼다. 6·25전쟁의 포화가 비켜간 대구에서는 많은 예술인들이 중앙로와 인근 향촌동을 중심으로 문화의 꽃을 피웠다.
중앙로는 대구 도심 거리의 알파요 오메가다. 대구 한복판에 터를 잡은 중앙로는 도로면 도로, 인도면 인도 어느 길 하나도 이곳을 벗어나서는 대구를 통과했다고 할 수 없는 요충지다. 달구벌대로·국채보상로·태평로 등 대구의 최대 간선도로가 중앙로를 동서로 통과하고, 최대 번화가인 동성로를 비롯해 350년 역사의 대구약령시 골목·진골목·통신골목·수제화골목 등도 중앙로를 중심으로 가지를 뻗어 있다. 땅 밑으로는 대구도시철도 1호선이 달리는 길이기도 하다.
한때 '중앙통'으로 불리던 중앙로는 2009년 12월 대중교통전용지구로 변모했다. 대구의 모든 교통수단이 대구역~반월당 사이 1.05㎞ 도로에 밀집하면서 교통혼잡이 극에 달한 탓이다. 도로에는 불법주차, 인도에는 각종 가판대와 간판으로 가득 차 사람과 차량의 통행을 막았다. 당시 도심을 통과하는 차량속도가 시간당 24.9㎞였는데, 중앙로는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10.9㎞에 불과할 정도였다.
이에 대구시가 특단의 대책을 내놨다. 이 구간을 대중교통전용지구로 묶어 일반 승용·승합차의 통행을 아예 차단했다. 영업용 택시는 교통혼잡시간대를 피해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10시까지만 허용했고, 장애인이나 금융기관의 특수차량에 대해서는 통행증을 따로 발급했다. 중앙로에는 시내버스와 이륜자동차만 다니게 된 것이다.
기존에 왕복 4차로였던 중앙로는 2차로로 축소했다. 차로가 다이어트를 하다 보니 폭 3m에 불과했던 인도는 12m까지 4배 넓어졌고, 횡단보도는 기존 3곳에서 10곳으로 늘어나 보행자들의 통행이 한결 편해졌다.
2020년 7월에는 중앙로 남북 방향 중간 지점의 중앙네거리에 'X자형 횡단보도'가 생겨났고, 비를 막는 대중교통 셸터도 만들어지면서 중앙로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6일 낮 봄을 맞은 중앙로는 겨울 내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움츠렸던 기지개를 한껏 켜고 있었다. 대구도시철도 1·2호선이 교차하는 반월당네거리에서 중앙네거리를 지나 대구역네거리까지는 어른 보통 걸음으로 15분이면 충분하지만 노포와 신장개업 간판이 뒤섞인 거리를 두리번거리다 보니 시간은 엿가락처럼 늘어져 갔다.
반월당 덕산빌딩에서 출발해 중앙로 북쪽으로 걷다가 문득 중앙파출소가 '동성로관광안내소'로 간판을 바꾼 사실에 세월의 흐름이 느껴졌다. 도심 취객들의 애환이 담긴 중앙파출소는 2018년 8월 인근 약령시 서문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헌혈의집과 문화예술전용극장CT, 커피숍, 24시편의점, CGV대구아카데미 영화관을 지나 중앙네거리에서 X자형 횡단보도를 만났다. 중앙로 남측과 북측의 갈림길이다. 신호등 초록불 한 번으로 네거리 어떤 곳으로든 갈 수 있는 이 횡단보도는 보행자에겐 안성맞춤이다.
이곳 네거리의 랜드마크였던 롯데영플라자 대구점은 최근 철거됐다. 최고 39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을 짓는다고 한다. 한눈팔고 있는 사이에 도심에서는 빌딩 하나가 생겼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대구역네거리로 가는 길에는 국내 최초의 클래식음악감상실 녹향이 대구문학관과 향촌문화관 지하에 터를 잡고 있었다.
옛 기억을 더듬어보면 중앙로 인도는 행인끼리 어깨를 부딪히지 않고는 걸을 수 없는 길이었다. 그런데 이날 중앙로는 인파 속에서도 붐빈다는 느낌이 없었다. 인도 폭이 최고 12m까지 늘어난 덕분이었다.
한때 주차장이나 다름없던 도로는 뻥 뚫려 있었다. 1㎞ 정도 걷는 동안 왕복2차로인 중앙로는 텅 빈 도로 같았다. 시내버스가 끊임없이 오가는데도 승용차가 다니지 않다 보니 도심 한복판이 시골길이나 다름없었다.
중앙로에서 뻗어 있는 골목도 전국구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동성로관광안내소 자리에서 동쪽으로 동성로와 통신골목으로 이어진다. 예나 지금이나 젊음의 물결이 끊이지 않는 동성로는 최근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1969년 12월 문을 연 대구백화점 본점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영업을 중단하고 새 주인을 맞은 것이다. 통신골목에서는 '폰값 똥값'이라는 간판의 휴대폰 판매가게들이 여전히 성업 중이다.
관광안내소 서쪽으로는 조선 효종 때 개설된 대구약령시가 있다. 350년 역사의 이 약령거리에는 인근에 현대백화점이 들어선 후 카페와 식당 등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여전히 150여 한방 가게들이 남아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약령골목은 또 대구종로거리와 진골목으로 이어져 대구의 근대 역사와 연결되는 혈관 같은 곳이다. 중앙로 북편에서도 샛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경상감영공원과 대구근대역사관이 나온다.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수제화골목은 그곳에서 오랜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한 이후 성과는 각종 수치로 또렷이 드러났다. 시내버스 이용객이 2009년에는 489만 명이었지만 5년 후인 2014년에는 654만 명으로 33.8% 증가했고, 평일 오전 10시~오후 10시 12시간 유동인구도 5만6,311명에서 6만6,294명으로 17.7% 늘었다.
반면 차량통행이 줄어들면서 중앙로의 환경이 부쩍 개선됐다. 이산화질소는 54% 감소했고 미세먼지 36%, 일산화탄소 33%, 아황산가스는 25% 줄었다. 소음도 68㏈에서 64㏈로 낮아졌다.
이에 힘입어 중앙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이전인 2019년까지만 해도 지구의 날인 매년 4월 22일이면 어김없이 '지구를 위한 차 없는 거리'로 탈바꿈했다. '녹색 대행진'과 '미세먼지 아웃', '플라스틱 없는 하루'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려 시민들이 달라진 대구 도심 환경을 만끽했다.
지난해 7월 시민 300명과 전문가 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일반인 응답자의 69%(매우 만족 20%, 만족 49%)가 이 같은 중앙로의 변화에 호응했다. 불만족은 5%에 그쳤다. 승용차 통행제한 지속 여부에 대해서도 일반인 85%, 전문가 90%가 찬성했다.
중앙로는 국내에서 도심 간선도로가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된 첫 사례다. 자연히 전국의 다른 지자체들도 대구의 선도적인 개선 노력에 주목했다. 그 결과 2014년 1월에는 서울 연세로, 이듬해인 2015년 4월에는 부산 동천로가 대구의 전철을 밟아 속속 대중교통전용지구로 바뀌었다.
하지만 마냥 축배만 들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도 해묵은 숙제를 안고 있다. 인근 대구약령시로 승용차 진입이 어려워지면서 50, 60대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약령골목 입구 대흥당약업사 김남화(68) 대표는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된 후 손님들이 불편해서 잘 찾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또 이곳 도로와 인도를 누비는 오토바이와 킥보드, 전기자전거 등 개인형 이동장치(PM)가 이따금 행인들의 보행을 위협하기도 한다.
대구시는 경찰과 협조해 교통안전을 확보하고,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에 대한 교통량 분석을 통해 전반적인 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최영호 대구시 교통국장은 "중앙로를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한 후 상습 교통체증이 말끔히 사라지고 시민들이 다니기 편한 길이 됐다"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명소가 될 수 있도록 시민 편의시설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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