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개장터로 유명한 경남 하동군 화개면에는 시골 마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축사가 없다. 신라 시대부터 1,200년 역사를 이어온 차 시배지(식물을 처음으로 심어 가꾼 곳)라는 자부심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최상의 녹차를 생산하기 위한 하동 주민들의 합심이 축사와 농약, 화학비료 없는 ‘3무(無) 청정지대’를 만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제약에도 스타벅스 본사가 있는 미국 시애틀까지 5년째 하동 녹차가 수출되는 이유다.
매화꽃에서 벚꽃으로 봄내음이 바뀌는 이맘때면 하동은 전국에서 몰려든 상춘객들로 붐빈다. 지리산과 화개장터의 유명세를 쫓아 하동까지 온 외지인들이 빠지지 않고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곳이 화개다. 쌍계사 초입에 들어서면 828년 신라 사신 대렴이 중국 당나라에서 들여온 차나무 씨앗을 흥덕왕의 지시로 쌍계사 주변에 심기 시작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쌍계사 차 시배지 주변에서 정금리까지 이어진 2.7㎞의 정금차밭을 지나다 보면, 천년차나무 보전관리 지역이 눈에 들어온다. 높이만 4.2m에 달하는 1,000년 된 차나무가 있던 자리다. 2013년 동해(凍害)로 안타깝게도 나무는 고사했지만, 그 밑동에 어린 차나무들이 자라면서 명맥을 잇고 있다. 지난달 28일 만난 ‘천년차나무’ 밭 주인 오재홍 도심다원 사장은 “일본에서 350년 된 차나무 지름이 천년차나무의 3분의 1 정도 됐다”면서 “하동의 차나무 역사를 증명하는 장소”라고 말했다.
차 시배지의 명성에 맞게 하동은 1,060여 농가에서 전국 생산량의 30%에 달하는 1,223톤의 차를 생산한다. 차나무의 학명은 카멜리아 시넨시스다. 잎 크기에 따라 대엽종과 소엽종 등으로 분류하는데 대엽종은 주로 열대지방에서, 소엽종은 하동처럼 겨울이 있는 지역에서 자란다. 차는 24절기의 6번째인 곡우(4월 20일)를 기준으로 수확 시기에 따라 △우전(곡우 이전) △세작(곡우 이후 8~10일 사이) △중작(5월) △대작(6월)으로 분류한다. 본격적인 차 수확으로 바빠지는 시기는 4월이다.
하동 화개 일대가 1,000년 이상 차 재배지로 명성을 떨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화개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계곡을 따라 형성된 차밭 주변은 낮과 밤의 온도차가 커 안개가 많이 끼고 바위도 많다. 차나무가 자라는 데 최적의 재배 조건이다. 오흥석 하동녹차연구소장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데다 ‘3무 청정지역’을 만들겠다는 생산 농가들의 마음이 합쳐져 최상의 녹차를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동 차의 품질은 세계에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2017년 스타벅스 본사에 ‘K-MATCHA’라는 이름으로 가루녹차를 수출하기 시작한 게 상징적이다. 코로나19라는 장벽을 뚫고 지난해 미국과 멕시코 등 세계 9개국에 304만 달러(약 41억 원) 상당을 수출했고, 올해는 500만 달러(약 60억 원)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품질의 우수성도 이미 여러 차례 입증됐다. 국내에서는 2016년에 국가중요농업유산 6호로, 해외에서는 2018년 3월에 세계중요농업유산으로 지정됐다.
하동 차의 세계화는 내년 5월 ‘하동 세계 차 엑스포’를 계기로 더욱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10개 전시관에서 100여 개 프로그램이 마련될 엑스포를 통해 하동 차의 글로벌화는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1년 연기돼 열리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 전염병에 맞서기 위해 대표적 건강식품인 차를 찾는 수요가 그사이 더 커졌기 때문이다.
윤상기 하동군수는 “이미 하동 녹차의 품질은 전 세계로부터 인정받고 있다”며 “내년 하동 세계 차 엑스포는 하동이 차의 메카로 인정받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