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3명을 포함해 12명으로 구성된 ‘고려대의료원 우크라이나 난민 의료지원 봉사단’이 국내 대학병원으로는 처음으로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2일까지 2주간 폴란드 동남부 메디카·루블린 등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 10여 곳을 돌면서 500여 명의 피란민들에게 온기를 전하고 돌아왔다.
우크라이나 난민 의료지원 활동을 마치고 갓 귀국한 조원민(고려대 안산병원 흉부외과 교수) 봉사단장을 지난 4일 오후 고려대 안산병원에서 만났다. 조 단장은 우크라이나 난민 의료지원을 다녀온 소회를 묻자 “천신만고 끝에 참혹한 전장을 벗어난 어린이들이 상실감으로 넋을 놓은 부모 옆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 노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미어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수많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여러 날 동안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폐허가 된 전쟁터를 빠져나오느라 심한 트라우마(심리적 외상)에 시달리고 있는데,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웠습니다. 또한 난민 생활이 길어지면서 기존에 앓던 질환들을 관리하지 못해 고통을 겪는 환자들도 많아 의료 지원이 절실했습니다.”
단장 입장에서 보면 난민촌 상황이 워낙 열악하다 보니 여러모로 안타까웠던 듯하지만 동행한 이들은 봉사단이 피란민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고 귀띔했다.
난민촌에 머물던 한 중년 여성이 목 통증을 끊임없이 호소했다. 이를 목격한 정철웅 고려대 안암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가 휴대용 초음파검사 기기로 진찰했고, 그 결과 갑상선 종양이 의심돼 곧바로 폴란드 현지 병원에 연결해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김도훈 고려대 안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자정이 넘은 시간에 심정지가 발생한 난민을 치료해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조 단장은 이번 봉사단 활동 가운데 가장 보람 있었던 일로, 고려인 난민들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을 꼽았다. 구소련 시절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연고 없는 머나먼 우크라이나로 쫓겨나 척박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살고 있는 고려인 가운데 전쟁통에 경황없이 가족과 뿔뿔이 헤어진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어요. 우리 봉사단은 폴란드 바르샤바 교외 나다르진에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이들 난민뿐만 아니라 폴란드에 흩어져 살고 있는 고려인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울러 그들에게 어떻게 건강을 관리해야 하는지 조언하고 상비약과 코로나19 방역 키트는 물론 고추장과 된장, 김치 등 한국 식품과 생필품도 전달했지요.”
조 단장은 돌아와서도 그들이 전쟁의 참화를 잘 극복하고 이른 시일 내에 평화를 되찾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고 했다.
이 밖에도 봉사단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직접 들어가 활동하고 있는 한국선교단체 등에 코로나19 검사 키트, 응급 키트, 갑상선 치료제 등 1억 원 상당의 의약품을 전달하고, 응급 외상 처치에 필요한 의료교육까지 진행했다. 조 단장은 “앞으로 우크라이나 상황이 안정되면 긴급 재건 구호 등 현지 요구에 따라 적절한 의료 지원에 추가로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봉사단 활동 의미를 묻는 질문에 “우리나라가 6ㆍ25 전쟁의 상흔으로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다른 나라로부터 도움을 받고 희망을 되찾았는데, 이번에 비록 작은 힘이나마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용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한 데 보람을 느낀다”며 “이번 봉사 활동이 전 세계 평화에 대한 갈망과 도움을 이끌어내는 마중물이 되길 희망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