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누차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언했음에도 '여가부 폐지 반대론'은 점점 더 덩치를 불려 나가고 있다. 폐지에 반대하는 수준을 넘어 성평등 전담 부처 권한과 역할을 더 키워야 한다는 여론까지 일어나고 있다. 강력한 폐지론이 되레 역풍을 불러온 모양새다. 이 때문인지 주무부처임에도 입을 굳게 닫고 있던 여가부에서도 미묘한 분위기 변화가 감지된다.
4일 여성주요그룹(Women's Major Group), 국제여성연합(International Alliance of Women) 등 해외 여성·인권시민단체 115개는 '한국 대통령 당선인의 여가부 폐지 공약 철회 요구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국내 여성단체들의 반발에 이어 국제시민단체도 힘을 보탠 것이다.
이들은 성평등 부처 폐지는 국제사회 흐름에 역행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성명서를 통해 "적절한 예산과 인력을 보장받는 성평등 정책 전담기구 필요성은 보편적 국제 기준"이라고 밝혔다. 1995년 한국을 포함한 189개국 만장일치로 통과된 국제 규범 '베이징행동강령'과 2021년 베이징행동강령 이행을 권고한 유엔여성지위위원회의 합의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경제 지표에선 선진국이지만, 여성인권 측면에 있어서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며 "여가부 폐지 공약을 철회하고 권한과 역할 강화를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국내에서도 여가부 폐지 반대론은 커지고 있다. 여성단체들의 폐지 반대 토론회에 이어 경남도의회, 광주시의회, 대전시의회, 수원시의회 등이 여가부 존치를 요구하는 대정부 결의안을 채택했다. 서울시의회는 최근 시의 여성가족정책실을 확대 개편한 '여성가족지원청'을 만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다가올 지방선거를 고려한 조치다.
무기력하던 여가부 내부 분위기도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다. 정영애 여가부 장관은 지난 1일 한 언론사의 칼럼에 대한 반박문을 공개했다.
여가부 장관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다 공개적으로 글을 올렸을 뿐 아니라 내용도 직설적이다. 정 장관은 여가부 장관이 여자들끼리 나눠먹는 자리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모든 장관이 남성이었던 수많은 부처에 대한 의문제기가 우선"이라고 되받아쳤다.
또 여가부가 돌봄 업무를 가져옴으로써 돌봄을 여성 몫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돌봄은 여성의 몫이어서가 아니라 성평등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고, 다음 정부에서도 성평등을 담당하는 부처가 돌봄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을 위해 돌봄 문제는 미래가족부 등 다른 부처에 떼줘야 한다는 인수위 측 논리까지 반박해버린 셈이다. 정 장관이 직접 나서 오해를 바로잡고 가겠다는 의지로 직접 쓴 글로 알려졌다.
이런 기류는 이날 여가부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지난해 실적을 공개하면서 영상 삭제 등 지원을 받은 남성 피해자 수가 2배(926명→1,843명) 증가했다는 점을 강조한 점에서도 잘 드러났다.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을 위해서도 일하고 있는 조직임을 전면에 내세운 셈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여가부 스스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 부처인지 꿋꿋이 알려 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