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이 높으면 집이 훨씬 넓어 보인다. 반면 천장이 낮으면 보기에 답답할 뿐 아니라 건강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우리나라 군에서는 장병 복지를 위해 딱딱한 침상을 침대로 교체하고 있다. 그런데 생활관 신축이 어려운 일부 부대에서는 2층 침대를 기존 생활관에 들여놓고 있다. 기존 시설은 천장이 낮아 여름에는 에어컨 바람 때문에, 겨울에는 천장에 모이는 탁한 공기로 인해 2층에서 자는 장병들이 호흡기 질환에 시달린다. 이처럼 높이(Height)는 건강한 공간을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과연 도시에서 적절한 높이는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자.
도시에서 높이가 가지는 의미는 다양하며 시대에 따라 적절한 높이도 변해왔다. 우선 천장 높이에 대한 법적 기준을 살펴보자. ‘건축물방화구조규칙’에서는 통상적인 건축물의 거실 천장의 최소 높이를 2.1m로 규정하고 있다.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나 스프링클러 등을 감안해 사람이 서서 이동하기 위한 최소 높이를 그렇게 정한 것이다. 신기하게도 이 높이는 영국에서 1848년 제정된 ‘공중위생법’상 거주가 가능한 지하실의 최소 천장 높이, 7피트(약 2.1m)와도 일치한다. 아마도 영국의 기준들이 여러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주택건설기준규칙’에서는 주택의 거실 및 침실의 천장 높이를 일반 건물보다 10㎝ 더 높은 최소 2.2m로 규정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과 같은 높이다. 아무래도 사람이 머무는 시간이 긴 공간이다 보니 다른 건축물보다 공기 순환이나 안전을 위해 기준을 조금 더 높인 것으로 보인다. 개인 공간인 침실보다 가족 전체가 사용하는 거실은 우물천장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공간일수록 높은 천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은 거의 모든 시설에 다 적용된다. 예를 들어 200㎡ 이상의 문화시설이나 종교시설 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건물은 천장 높이를 4m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주택의 평균 천장 높이는 2.3~2.4m로 법적 최소 기준보다 10~20㎝ 높은데 최근 들어 천장고가 더 높은 아파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천장이 높을수록 공사비가 상승하지만 개방감과 수납공간 확대로 인해 분양성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판교 신도시의 자투리 땅에 공급한 한 아파트는 천장고를 3m로 높이는 파격적인 전략으로 대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천장 높이에 대한 허술한 규정은 꼼수와 편법을 조장하기도 한다. 오피스텔의 경우 다락방을 최대 1.5m까지 인정해주는데, 이를 근거로 실내계단을 설치하고 다락방을 침실로 사용해 공간효율을 극대화하고 있다. 다락방을 포함한 오피스텔의 천장고는 평균 4.2m로 일반주택보다 훨씬 높다.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쓸모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몸부림이지만 엄격히 따지면 편법이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어느 도시에서는 높이 규제를 구체적인 건물 높이(m)로 하지 않고 층수 기준으로 ‘3층 이하’로 규정한 지역에서 한 층 높이가 6m인 3층짜리 상가가 신축돼 인근 조망권을 침해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는 재건축단지의 숙원이었던 ‘35층 높이 규제 철폐’가 포함됐다. 중요한 걸림돌이 사라짐으로써 재개발, 재건축 활성화를 통한 주택공급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제도를 잘 운영한다면 칼로 자른 듯한 천편일률적인 스카이라인이 개선되고 유연하고 다양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용적률에는 변화가 없으므로 결과적으로 건물이 높아지는 대신 더 날씬해져서 조망을 확보할 수 있는 열린공간, 소위 통경축(通景軸·Visual Corridor)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마냥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만은 없다. 가이드라인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많이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이빨 빠진 듯한 괴상한 스카이라인이 생길 수도 있다. 평균 층수가 높을 때는 ‘유연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평균 45층의 건물을 짓는다면 동당 4~5층 차이로는 다양한 스카이라인 형성이 어렵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만 보더라도 가장 낮은 D동(42층)을 제외하면 55~65층으로 10개 층의 차이가 나지만 멀리서 볼 때는 비슷한 층고로 보인다. 다양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각 동의 높이 차이가 일정 수준 이상 돼야 한다.
또한 한강변 인접단지의 통경축 확보만으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높게 지으면 한강 조망에 유리해 사업성이 좋아지는데, 한강변 아파트나 그 안쪽 아파트나 사정은 같다. 만약 한강변 아파트가 충분한 통경축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그 뒤쪽 아파트가 통경축을 가리게 된다면 결국 헛일이 된다. 켜켜이 들어선 50층 내외의 아파트들이 서로 한강을 볼 수 있는 위치를 잡다 보면 결과적으로 한강을 이용하는 일반 시민들은 초고층 아파트로 꽉 막힌 경관을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통경축 확보는 개별 단지 차원을 넘어 일정 구역 전체에 대한 마스터플랜을 작성한 후 이에 기반해 일관성 있게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건축물의 내부든, 외부든 높다고 반드시 좋은 건 아니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2.7m 정도까지는 천장이 10㎝ 높아질 때마다 공사비가 약 5%씩 증가한다고 한다. 만약 기존의 천장을 30㎝ 높이면 15%의 자원을 더 쓰게 된다. 당연히 거주하는 동안 냉난방을 위한 에너지 소비도 증가할 것이므로 도시 전체의 에너지 사용량은 증가한다. 그러니 천장이 높아지는 추세를 환영할 수만은 없다. 천장 최고 높이에 대한 기준이 필요한 이유다.
편법적으로 운용되는 오피스텔의 다락방 높이 기준도 개선이 필요하다. 실질적으로는 침실임에도 불구하고 다락방 규정을 적용하다 보니 어정쩡한 복층 오피스텔이 난립하고 있다. 오히려 제대로 된 복층 오피스텔과 아파트가 공급될 수 있도록 충분한 천장 높이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면적과 높이 기준에 부가적으로 체적 기준을 도입해 3차원 공간의 가치를 정확히 반영한 제도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프랑스에서는 적정주택의 최소 기준을 제시하면서 ‘20㎥(cubic meter)’라는 체적 기준을 사용하고 있다.
아파트를 포함한 초고층 건축물에 대해서도 보다 합리적인 높이 기준과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강남구 삼성동에 개발 중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의 사례를 보자. 애초 569m(105층)의 국내 최고 높이 빌딩으로 계획했으나, 현재는 50층짜리 3개 동으로 건축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막대한 공사비를 절감하고 공기도 단축해 실리를 챙기려는 민간회사의 전략적 판단이지만, 도시공간의 효율성 차원에서도 매우 바람직하다.
높이를 낮춰 절감한 재원을 도심공항교통이나 자율주행 같은 보다 생산적인 곳에 투자한다면 기업 이윤뿐 아니라 사회적 편익도 훨씬 커질 것이다. 게다가 공기도 단축되니 영동대로 지하의 복합환승센터와 함께 개장해 시너지효과를 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서울시나 강남구에서는 사업자가 슈퍼 초고층을 포기한 것에 대해 실망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박수를 쳐줘야 한다.
적절한 높이 기준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필요 불가결하다. 프랑스 파리는 강력한 높이 기준과 디자인 통제를 통해 아름다운 스카이라인과 도시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영국 런던도 강변이나 중심지역에는 고층건물을 불허함으로써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도 민간사업자나 몇 사람의 심의위원에게 높이 결정을 맡길 것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상세한 높이 기준을 도입해 건강하고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데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