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직장인 A씨는 지난해 11월 영국 스포츠유틸리티(SUV) 브랜드인 랜드로버에서 새 차를 인수했다. 주문한 지 넉 달 만이었다. 그런데 당연히 2개일 거라 여겼던 스마트키가 1개뿐이었다. 1억 원도 넘는 고급차를 사면서 여분 키를 못 받아 당황한 A씨에게 자동차 딜러는 "나머지 키는 추후 국내 서비스센터를 통해 지급될 예정"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났지만 상황은 그대로다. A씨는 3일 한국일보에 "키 하나에 100만 원이 넘는데 여태 아무 소식이 없다"며 "차를 사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한국일보 취재에 따르면 랜드로버는 지난해 10~12월 출고된 차량의 고객에게 스마트키를 1개만 제공했다. 자동차 업계를 휩쓸고 있는 '반도체 공급 대란' 때문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이 원활치 않자 보조 스마트키 같은 제품 생산을 뒤로 미루며 자구책을 마련한 셈이다. 랜드로버 측은 "올해 1월부터는 키 2개를 정상 지급하고 있고, 보조키를 받지 못한 고객에게도 순차적으로 지급하도록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른 자동차 제조사도 비슷한 상황이라, 각 사는 부족한 반도체 물량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일부 수입차 브랜드는 신차 출고를 앞당기기 위해 반도체가 탑재되는 편의 기능을 제외하는 '마이너스 옵션'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벤츠는 GLE 모델에서 '메모리 시트' 기능을, BMW 5시리즈는 '터치 플레이' 기능을 뺐다.
코로나19 유행 와중에 완성차 수요 예측이 빗나가면서 파생된 차량용 반도체 대란은 재작년부터 현실화해 장기화하는 양상이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동차 수요는 많은데 (반도체 부족으로) 공급이 어려운 상황이라 제조사들의 고민이 깊은 상황"이라며 "향후 몇 년간은 반도체 수급 부족 현상이 지속될 걸로 보여, 통합칩 개발 등 새로운 타개책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