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으로 빚은 희도... 김태리의 청춘예찬 [인터뷰]

입력
2022.04.04 08:10
21면
'X세대 여고생' 희도 연기한 김태리
청춘의 소중함 그려 
넷플릭스 비영어 드라마 2주 연속 세계 2위
국경·세대 뛰어넘어 인기
"행복의 시간 작게나마 드릴 수 있어 기뻐" 눈물
6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펜싱 연습
사자상 올라탄 럭비공 같은 배우
취미는 자연 속 '버드 와칭'
최동훈 감독 '외계+인' 개봉 기다려
"희도가 준 성장통 잊지 않을 것"

"행복의 시간을 작게나마 드릴 수 있어 기뻐요.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든 것만으로도…." 3일 tvN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종방 전 화상으로 만난 김태리는 인터뷰 도중 눈물을 쏟았다. 이 드라마를 향한 뜨거운 관심을 계기로 그간 받아온 주위의 격려와 지지가 떠올라 갑자기 벅차오른 듯했다. "희도가 받는 사랑이 너무 커 놀랐어요. 애신('미스터 션샤인'·2018) 때도 느껴 보지 못한 반응이었거든요."



'숙희'도 '애신'도 없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서 김태리는 고등학생 희도를 연기했다. 외환위기(IMF)로 대학을 중퇴하고 가족과 뿔뿔이 흩어진 이진(남주혁) 그리고 친구 유림(보나)을 일으켜 세운 밝은 희도를 보며 1990년대 청춘을 지낸 X세대와 요즘 Z세대 시청자는 함께 울고, 웃었다.

스태프가 건넨 휴지로 눈물을 닦은 김태리는 "영화 '아가씨'에 쓰인 단어인데, 구원이란 말이 참 좋은 거 같다"며 "(어렵게 연기를 했는데) 그런 순간들이 보상되는 것 같고, 그걸로 족하다"고 말했다. "창피하네요." 쑥스러워하던 그녀의 눈물은 한동안 마르지 않았다. 올해 서른둘, 김태리는 희도에 푹 빠져 있었다. 목소리는 높았고, 양손을 크게 쓰며 순간의 감정을 다양하게 드러냈다. 심지가 굳고 말을 아끼며(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 진중했던('미스터 션샤인') 김태리는 없었다. 모니터 건너엔 한껏 들뜬 '소녀'가 앉아 있었다.

"희도가 돼보고 싶었어요. 대본을 보고, 그 밝은 에너지에 끌렸다랄까요. 그 시기, 제 마음에 사랑이 넘쳤고, 그 에너지를 시청자들에게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어 빨리 연기하고 싶었죠. '희도가 이런 말과 행동을 해 줘서 너무 좋다'고 감탄하면서요."




태리의 일지가 희도의 일기로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희도와 이진의 풋사랑으로 즐거움을 주고, 잔뜩 쪼그라든 청춘을 보듬어 국경과 세대를 뛰어넘어 다양한 시청자를 불러 모았다. 국내에선 시청률 두 자릿수를 유지했고, 3일 기준 넷플릭스에선 최근 2주 연속 비영어권 드라마 부문에서 시청 시간 세계 2위를 차지했다.

김태리는 땀으로 희도의 청춘을 빚었다. 고교 펜싱 선수인 희도를 연기하기 위해 김태리는 5~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펜싱을 연습했다. "당장 기술을 갈고 닦아 유림이를 이겨야 하는데, 하루라도 빠지면 불안하고 미칠 것 같았다"고 했다. '모든 게 느리다. 발 느리면 팔이라도 빠르던가' '앞발 확실히 디뎌주기'. 펜싱 칼을 쥐고 이렇게 땀을 흘린 순간을 매일 기록한 김태리의 훈련 일지는 드라마 속 희도의 일기로 쓰였다. 김태리는 "평소에 쓰던 말을 희도 대사로 많이 썼다"고 했다. 극에서 흔들리는 이진을 붙잡고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희도는 '모든 순간이 특별하다'는 뜻의 영문 'Every moment is special'이 적힌 모자를 쓰고 있었다. 김태리가 고른 모자로, 청춘의 찰나와 소중함이란 드라마의 주제를 담은 소품이었다.


편의점 알바, 칠전팔기... 김태리의 키워드

박찬욱, 임순례, 장준환 감독은 함께 작업한 김태리를 '단단하고 고집 있는 배우'라고 했다. 희도를 연기한 김태리는 실제 어떤 학생이었을까. 김태리는 "내가 원하고 생각하는 걸 말하는, 희도 같은 모습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며 "희도의 칠전팔기도 나와 닮았다"고 말했다. 김태리는 희도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학생이기도 했다. 중학생 때 십자수 동아리에 들었던 그녀는 대학생 때 자신의 키보다 훨씬 높은 사자상에 올라가는 '도발'도 했다. 충무로와 안방극장을 사로잡은 30대 스타 배우의 취미는 산과 들로 나가 새를 보는 것이다. 드라마를 끝낸 김태리는 최동훈 감독과 함께 한 신작 '외계+인'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데뷔 전 김태리는 편의점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녀는 또래 배우와 달리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목소리와 표정을 지녔다. 민주화 운동을 다룬 '1987'(2017)에 출연한 김태리는 광화문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고, '미투 운동'을 지지했다. 그녀는 삶을 꾸준히 메모한다. 과거에 쌓인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고 믿는다. 김태리는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어떻게 기록할까.

"에너지는 충전된다고 믿었는데, 주변엔 (충천을 해 줄) 콘센트가 없다는 걸 처음 깨달았죠. 힘들었지만 이 성장통의 순간을 잊지 않으려고요. 희도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요."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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