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적률 혜택 '녹색건축인증' 뜯어보니...신재생에너지 100% 건물, 2.5% 건물과 똑같은 취급 [그린워싱탐정]

입력
2022.04.05 12:00
17면
부동산 세제 혜택, 용적률·높이 제한 완화 특혜
인증 기준 뜯어보니...신재생에너지 찬밥 취급
해외와 달리 사후 관리나 감독 전혀 없이 방치
자전거 거치대, 분리수거함 등 과잉 배점 많아 
"점수 따기 쉬운 것 위주 인증 체계 됐다" 비판

[그린워싱 탐정]<4>녹색건축인증

지난 1일 방문한 서울 용산구의 K빌딩. 건물 현관에 금색 간판이 걸려 있다. 2015년 국토교통부와 환경부가 주관하는 ‘녹색건축인증’을 받았다는 표시다. 정부가 운영을 총괄하고, 공공·민관기관 10곳이 인증하는 제도다. 팻말엔 인증 기관명(한국생산성본부인증원)과 인증 등급, 유효기간이 적혀 있다.

등급은 우수(그린 2등급)로, 전체 4개 등급 중 두 번째에 해당하는 높은 등급이다. 유효기간은 2020년까지여서 이미 지났지만, 기간 만료에 따른 별다른 규정이 없어 간판이 그냥 걸려 있다.

녹색건축인증은 부동산 세제 및 재테크 부분에서 중요하다. 이 인증과 ‘에너지효율등급’ 인증을 동시에 받으면 재산세·취득세를 최대 10%까지 감면해준다. 용적률·높이 제한도 최대 9%까지 완화해 준다. K빌딩 역시 용적률 혜택을 받았다.

그런데 K빌딩의 지난해 1분기 에너지사용량등급은 D등급이다. 총 5개 등급 중 네 번째로 낮다. 서울시의 일반적인 건축물보다 1㎡당 에너지를 110~130% 더 많이 썼다는 의미다.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녹색건축인증의 허점을 취재했다. 자전거 거치대도 배점 2점인데 신재생에너지 사용 배점은 최대 3.6점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100%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건물과 2.5% 신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건물이 똑같은 취급을 당한다.



녹색건축인증 건물 찾아가봤다

K빌딩은 건물 상층부에 태양광 패널이 조금 설치된 것 외에 다른 건물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건물 뒤편에 “친환경 인증 우수단지 조성을 위하여 설치된 육생 비오톱(biotope)입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적힌 정원이 있는 게 전부다. 태양광 패널은 면적이 넓지 않아 건물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0.54%만 담당하며, 정원도 인근 빌딩 정원과 유사하다.

‘연간 에너지사용량등급’에서도 K빌딩은 저조한 성적을 보인다. 에너지사용량등급이란 건축물의 실제 에너지 사용량을 시·도 건축물의 평균 에너지 사용량과 비교·평가하는 제도다. 등급이 낮을수록 지역 평균보다 1㎡당 에너지 사용량이 많다.


K빌딩은 등급 측정이 시작된 2018년 4분기부터 총 10회 등급을 측정했는데, A~E등급 중 하위에 속하는 C등급을 3번, D등급을 7번 받았다. ‘친환경 건축물’이라고 인증까지 받은 건축물이 주변 건물보다 에너지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2017년 녹색건축인증 2등급을 받은 경기 오산의 C건물도 찾았다. 이 건물도 용적률 혜택을 받았는데, 지난해 1분기 건물 에너지사용량등급이 D등급이었다.

이 건물에도 태양광 시설이 설치돼 있긴 하다. 건축주는 70kW 규모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전체 11개동으로 이뤄진 건물 중 4개동 옥상 일부에만 설치한 적은 용량이다. 건물 관리자는 이 설비가 엘리베이터·복도 전등 등 공동 전기의 10%만을 겨우 충족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녹색건축인증 평가에서 신재생에너지 사용은 핵심이 아니다. 전체 에너지 사용 중 '신재생에너지 이용'이 1~2.5%만 충족되면 된다. 2.5% 이상은 배점(3점)이 같아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50~100%에 이르는 건물이라도, 2.5%에 불과한 건물과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 2013년엔 신재생에너지 사용량 배점 최하 기준이 2%였는데, 심지어 1%로 더 내려갔다.

다른 항목인 '저탄소 에너지원 기술 적용'(배점 1점)에서 신재생에너지 설치비율이 1% 이상만 돼도 0.6점이 배점되는데, 이를 합쳐도 총 3.6점이다. '오존층 보호 및 지구온난화 저감' 항목도 있으나, 이는 냉난방 시설과 연관된 것으로 신재생에너지와 직접 관련이 없다.

시공사 입장에서는 기준점인 1~2.5%만 맞추면 그만이다. C건물 관계자는 “건물에 추가 설치 여력이 충분해 관리소 차원에서 태양광 패널 확장 논의를 했으나 건물이 이미 준공된 후엔 관련 규제가 많아 추진하지 못하고 포기했다”며 “건설 단계의 설치용량이 중요한데, 인증 기준 자체가 낮으니 건축주도 2%(인증 당시 최하 기준) 이상 설치할 유인이 없다”고 했다.

이런 지적은 인증 기관 내부에서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인증 기관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2.5%’ 기준은 2016년 태양광 패널의 경제성이 떨어질 때 설정된 것”이라며 “현재는 경제성이 더 높아진 만큼 기준 상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물론 신재생에너지 사용 여부를 많이 감안하는 제로에너지건축물인증제도(ZEB)가 있으나, 2014년에 만들어져 아직 인증 건수가 2,000건도 안된다.


인증 건축물 절반, 에너지사용량 '평균 이상’

녹색건축인증은 지난해까지 1만8,606건이 부여됐다. 2016년 7,968건에서 5년 만에 2.33배가 늘어날 정도로 매년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연면적(각층 바닥면적 합) 3,000㎡ 이상 공공기관은 반드시 이 인증을 받아야 하고, 서울·경기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민간 건축물에도 인증을 의무화하고 있다. 세제 및 용적률 혜택도 있으니 민간 시공사들도 적극적이다.

건물의 건축·운영·폐기 등 생애주기 전 과정의 환경 부담을 평가한다는 목적으로 △토지이용 및 교통(대중교통 근접성, 자전거 주차장, 과도한 지하개발 지양 등) △에너지 및 환경오염 △재료 및 자원 △생태환경 등 9가지 항목에 배점이 있다. 부문별로 총점과 가중치를 두고 총합 기준 100점 만점 중 50점 이상이면 등급별 인증이 부여된다.


에너지 및 환경오염 부문은 가중치가 25점으로 점수가 가장 높다. 그런데도 K, C빌딩처럼 실제 에너지 사용량이 평균 이상인 경우가 허다하다.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부동산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0월 기준 에너지사용량 등급이 공개된 녹색건축인증 공동주택 중 46.7%(216곳)가 C등급을 받았다. 인증 주택 절반이 에너지 사용량 면에서 건축물 평균치(90~110%)에 그쳤다는 의미다. 평균치보다 낮은 D등급(110~130%)도 4.8% 있었고, 심지어 E등급(130% 이상)도 0.4% 있었다.

같은 기간 비인증 주택은 C등급 56.0%, D등급 17.3%, E등급 3.5%이어서 일부 개선 효과는 있으나, 여전히 사용량이 높은 건물이 많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자동차의 연비가 좋다고 해서 기름 사용량이 꼭 적은 것은 아니듯 에너지효율이 높은 건물도 사용자가 얼마나 많은 전기를 쓰느냐에 따라 사용량이 많아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현행 인증 기준이 에너지 성능이 떨어져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게 설계돼 있다고 지적한다.

녹색건축인증은 에너지 성능을 평가할 때, 주로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이라는 또 다른 친환경 인증 제도를 끌어와 적용한다. 에너지효율등급은 국토부가 건물의 에너지 성능만을 평가하기 위해 별도로 운영하는 인증 제도다.

이 인증에서는 건물 설계상 전기·냉난방 설비나 단열재 등 외피 성능을 측정 프로그램(ECO2)에 입력해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예측하고, 1+++ 등급부터 7등급까지 총 10개 등급을 부여한다.

문제는 에너지효율등급이 위에서 다섯 번째로 중간(2등급)만 돼도 4.8점이나 준다는 것이다. 신재생에너지를 100% 사용하는 건물이라도 고작 3.6점만 받을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2016년 인증 기준이 개정되기 전까지는 10개 등급 중 일곱 번째에만 해당돼도 4.8점을 줬는데 그나마 개선된 것이다.

이권형 동의대 건설공학부 교수는 “친환경 건물 인증에서 에너지 부문을 강화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며 “에너지 소비가 건물 탄소배출에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보다 엄격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사후관리·재평가 거의 전무... 해외는 10개월 후 재확인

사후 관리 체계가 없는 점도 문제점이다. 최초 인증을 받은 후 건축물이 설계대로의 효율을 유지하는지 관리·감독하는 체계가 부족하다.

우선, ‘커미셔닝’ 항목이 배점이 낮고, 필수가 아닌 선택항목으로 지정돼 있다. 커미셔닝이란 준공된 건축물이 설계대로 효율을 유지하는지 검증하고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조정하는 사후관리 기술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건물의 에너지 효율은 설계 도면을 중심으로 평가하는데, 건물이 실제 건축·운영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변수가 끼어들어 건축물의 효율이 바뀔 수 있다. 도면상 에너지 효율이 좋은 자재를 쓰더라도 자재 간 협응이 좋지 않거나, 외부 환경·사용 패턴 등과 결합돼 효율이 떨어지는 경우다. 신축 건축물에 대해 커미셔닝을 할 경우 10~30%가량의 에너지 사용량을 감축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의 친환경 건축 인증 제도는 커미셔닝 항목을 필수로 두고 배점도 6, 7점으로 높게 준다. 준공 후 10개월간 실제 건물이 설계상의 효율을 내는지 확인하고, 이후에도 에너지 사용량 등을 점검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도록 하고 있다. 영국의 브리암(Breeam)의 경우 상위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커미셔닝을 받아야 하고 150점 만점에 7점을 부여한다.

김진호 수원과학대 소방안전설비공학과 교수는 “커미셔닝 비용이 비싼 반면, 녹색건축인증의 점수가 2점뿐이고 선택 항목이어서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건물 효율을 보장하기 위해 배점을 6점으로 높이고 필수 항목으로 지정하는 기준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권형 교수도 "미국의 친환경 건축 인증(LEED)에서는 설계 단계에서 에너지 효율뿐 아니라 예상 사용량도 측정하도록 하고 준공 후 실제 사용량과 예상치를 비교·조정하는 작업을 거치지만, 국내 기준에는 이와 같은 항목이 없다"고 했다.

이 밖에 녹색건축인증은 건물 관리자를 위해 운영·유지 매뉴얼을 둘 경우 2점을 부여토록 돼 있는데, 한국일보가 취재한 건물 중 이런 사항을 인지하고 있는 곳은 찾을 수 없었다. 인증 2등급(우수)을 받은 서울 영등포구의 한 건물 관계자는 “관리자가 자주 바뀌다 보니 인증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수인계받지 못하고 있다”며 “환경 설비 유지·관리는커녕 일상적인 설비 고장을 감당하기에도 벅차다”고 했다.

국토부는 "유효기간이 5년뿐이고 만료 후에 재인증을 신청할 수 있게 해 사후관리를 이끌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실제 재인증을 받은 경우는 단 2건뿐이다.

7년 지난 기준… 새 기준 제정돼야

물론 녹색건축인증이 에너지 부문에 중점을 둘 필요는 없다는 반론도 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관계자는 "운영 과정의 에너지 효율은 다른 인증이 담당하고 녹색건축인증은 건축 자재나 건설 과정의 탄소 저감에 방점을 찍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러나 에너지 외 부문도 인증 기준이 지나치게 낡아 시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휘발성 유기 화합물(VOCs)이 나오지 않는 자재를 사용할 경우 최대 6점을 할당하는 항목이 대표적이다. VOCs는 끓는 점이 낮아 상온에서도 기화하는 물질을 말한다. 그중 벤젠·포름알데히드·부타디엔 등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포함돼 있고, 건축 자재의 원료로 쓰여 '새집 증후군' 등 환경 문제를 일으켰다.

그러나 김진호 교수는 “VOCs 불검출 자재는 일부 소형 건축물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인 비인증 건축물에서도 널리 쓰여 이미 기본값이 된 상황”이라며 “이런 항목은 점수를 줄 게 아니라, VOCs 검출 자재를 쓰면 인증을 신청 못 하게 하는 최저기준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 밖에도 자전거 거치대를 설치하거나, 6종 이상의 분리수거함을 두거나, 분리된 음식물쓰레기 처리시설을 마련하면 1, 2점씩을 부여하는 항목도 과잉 항목으로 보인다. 자동차 이용을 줄이고 자원순환을 독려하겠다는 취지인데, 이미 일반 건축물에도 기본적으로 적용되고 있어서 추가 점수를 주기엔 부적합하다는 지적이다. 인증기관 내부에서도 "점수 따기 쉬운 것 위주로 인증받기 좋은 체계가 돼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일부 항목이 현재 기준에 맞지 않고 탄소중립 시대에 맞춰 에너지 항목 개선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있다”며 "친환경 자재 사용 확대, 에너지 성능 강화 등을 반영한 기준 전면 개편 작업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
황은서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