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의외로 잠잠하다. 지난달 2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를 조작으로 결론 내린 남측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발사 전 과정을 진두지휘했는데도, 격한 반발은커녕 관련 언급조차 없다. ICBM이 직접 겨냥하는 미국이 유보적 태도를 취하고, 북한 역시 최고지도자의 권위와 직결된 사안이라 의도적 회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주요 매체들은 지난달 31일까지 남측 군 당국의 화성-17형 조작설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간 군사활동에 대한 남측의 메시지에 거칠게 맞대응해온 것과 사뭇 다른 태도다. 올 초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가 대표적이다. 북한은 1월 5일 극초음속 미사일로 포장한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렸는데, 우리 군 당국은 이튿날 “극초음속 비행체 기술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깎아내렸다. 그러자 북한은 같은 달 11일 김 위원장 참관하에 보란 듯 극초음속 미사일을 다시 쏘아 올렸다. 남측 논리가 틀렸다는 점을 행동으로 증명해 보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됐다.
그래서 북한의 이번 침묵은 이례적이다. 가뜩이나 북한이 주장하는 화성-17형 발사는 김 위원장이 친필 명령서를 통해 직접 지시했고, 대규모 인력을 동원한 선전 영상까지 공개하는 등 공식 ‘1호 행사’인 만큼 외부의 평가절하는 ‘모욕’에 가깝다.
뭔가 사정이 있을 법한데, 무엇보다 미국이 어떻게 나올지를 살피려는 목적이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의 신중한 태도가 근거다. 한미 군당국은 북한이 발사한 ICBM이 구형인 ‘화성-15형’이라는 데 의견을 일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 국방부는 “아직 분석 중”이라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며 확답을 피하고 있다. 굳이 북한을 자극해 핵실험 등 후속 도발의 빌미를 줄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북한도 나름의 고민이 있다. ICBM 조작설을 부인하는 대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화성-17형이 맞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선 남측이 발표한 여러 오류들을 조목조목 반박해야 한다. 단 이 과정이 자칫 주민들에게 알려질 경우 화성-17형 발사 성공을 엄청난 성과로 선전한 김 위원장의 체면이 깎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 체제 유지의 근간 중 하나가 ‘수령의 무오류성’”이라며 “ICBM 조작설은 김 위원장이 기만을 허용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정면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남측의 평가를 일부러 무시하면서 후속 도발 등 ‘마이웨이’를 걸을 것이란 얘기다.
실제 미국도 북한이 조만간 고강도 무력시위를 감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핵실험 가능성을 포함해) 북한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다른 미 행정부 당국자들 역시 CNN방송 등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실험 재개에 필요한 중요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