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러시아는 '특별군사작전'이라는 이름하에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격 단행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우크라이나 국경지대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전쟁이 발발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러시아와 나토 간 외교적 조율이 성사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우크라이나 문제'는 외교 아닌 군사적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게 됐다. 분쟁 당사자 양측 입장이 팽팽하게 대립된 가운데, 러시아는 자국의 목표를 최소치가 아니라 최대치로 잡고 이를 강제적으로 달성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러시아는 과연 자국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을까? 침공 초기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군사력 규모의 비대칭성 때문에 러시아군이 쉽게 우크라이나군을 제압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 및 국민은 결사항전 의지를 보이며 침략군에게 저항하였고, 우크라이나군은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다. 반면 러시아군은 전술적 실수, 보급문제, 기강 해이, 사기 저하와 같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키이우 및 하르키우 함락에 실패하는 등 여러 지역에서 고전하고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실패 사례를 연상하며 러시아군의 궁극적 패배를 점치기도 한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전선이 우크라이나 내부에 형성됨에 따라 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우크라이나의 몫이 됐다. 민간인 희생과 난민화, 도시 초토화, 군사 및 민간 기간시설 파괴로 인해 우크라이나의 피해는 날로 커져만 간다. 또 우크라이나군의 선전과 서방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영토에서 완전히 몰아내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양측 평화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러시아다. 협상의 핵심은 우크라이나의 중립국안과 영토문제인데, 우크라이나의 요구를 러시아가 수용하는가가 아니라 러시아의 요구를 우크라이나가 수용하는가가 관건이다. 물론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군사적, 외교적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러시아는 타협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합의는 쉽지 않고 평화협상은 앞으로도 오래 걸릴 것이다.
먼저 우크라이나의 중립국안을 살펴보자. 중립국화 방안에는 우크라이나의 군사동맹 가입 불가, 우크라이나 영토 내 외국군 주둔 및 군사기지 제공 불가, 외국군의 무기 배치 금지 등을 포함할 것이다. 이는 공식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를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2014년 러시아의 크림 합병 이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온 우크라이나와 나토 간 군사협력의 포기를 의미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반대하고 우크라이나-나토 간 합동군사훈련이나 서구의 무기 지원에 우려를 표명했던 것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는 분명 러시아 의지의 관철이라 평할 수 있다. 현재 젤렌스키 정부는 중립국안에 대한 반대급부로 안전보장조약을 요구하고 있으나 일단 중립국안은 수용한 것으로 보도된다.
둘째, 영토문제는 크림반도, 돈바스, 아조우해 연안 남부 벨트 지역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먼저 러시아는 크림반도의 러시아로의 영구 귀속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식적 승인을 요구한다. 이는 크림 반환을 위해 크림플랫폼이라는 국제회의까지 조직하였던 젤렌스키 정부의 움직임에 쐐기를 박는 것이다. 돈바스 지역은 러시아군이 이 지역을 완전 장악한 후 전체 영토에 대한 독립 내지 러시아 병합을 승인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러시아는 추가적으로 크림반도와 돈바스 사이의 아조우해 연안 지역을 '회랑' 형식으로 만들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영토 문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합의가 쉽지 않은 문제이며, 향후 남부 지역에서 군사상황의 진전에 따라 합의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는 강대국의 의지가 물리적 폭력을 통해 관철되는 잔혹한 현실주의적 국제정치의 복귀를 알리는 사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