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 맛집 없다'고 핀잔 듣던 공주의 숨은 칼국수집

입력
2022.04.02 08:00
14면
(80) 충남 공주 초가집 칼국수
주인도 직원도 멸치 맛도 30년
공주 토박이들 대를 이어 '후루룩'
밀가루 조합 연구 직접 면 뽑아내
'백년 가게' '으뜸 공주 맛집' 지정
직원은 동네 친구·신혼집 집주인
"사장이 그만 두는 날이 은퇴 날"

요즘이야 칼국수는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기는 서민 음식이다. 하지만 한때는 귀한 몸이었다. 양반집에서 주로 먹었고, 그 역시도 잔칫날과 같은 특별한 날에만 허용됐다. 남의 집 혼사가 궁금한 이들은 에둘러 ‘언제 국수 돌리느냐’고 물었다. ‘밀가루는 귀한 음식’이라는 공감대가 드러나는 말이다.

고귀한 국수의 신분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낮아졌다. 식량 원조용 미국산 밀가루가 대거 들어왔다. 이때부터 빵과 칼국수 등 밀가루 음식이 한국인의 식탁에 본격적으로 오르게 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 같은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대전을 중심으로 한 충청지역을 다니다 보면 칼국수 집이 유난히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 배경으로 여러 설이 거론되지만 그중 △한국전쟁 이후 미군 부대가 보유한 밀가루가 외부로 반출되면서 칼국수의 밑천이 됐다는 설 △원조 물자로 들어온 밀가루가 근대 철도물류 중심인 대전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 덕분이라는 이야기가 설득력 있다. 실제 지역의 웬만한 도시 먹자골목엔 두 집 건너 한 집이 칼국숫집이고, 중간중간 있는 분식집 메뉴에도 칼국수가 빠지지 않는다. 식당 하나 건너 하나가 칼국수 파는 집일 정도다.

대전과 인접한 웅진 백제의 고도, 박찬호의 고향, 인구 10만의 공주도 마찬가지다. ‘대표 음식도, 대표 맛집도 없는 동네’라는 자조가 출향민 사이에서 적지 않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들이 공주에 발을 붙이고 살 때의 이야기다.

겉만 봐선 알 수 없는 곳

산성시장에서 공주의 먹자골목인 중동골목길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허름한 국수 가게, ‘초가집’을 만난다. 공주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칼국숫집 중 하나로, 30년째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역 주민들에게 ‘공주에서 칼국숫집 하면 초가집’으로 통한다. 주인이 대물림된 노포(老鋪)는 아니지만, 반대로 손님들이 대를 이어 찾는다. 대표 관광지 공산성과 박찬호골목길, 공주산성시장과 인접한 탓에 주중엔 지역 주민, 공무원들이 많이 찾고 가게 밖으로 긴 줄이 늘어선 주말에는 관광객이 손님 대부분을 차지한다.

유명세를 듣고 가게를 찾는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가게 이름만큼이나 낮고 작은 가게다. 무심코 골목길을 걷다간 놓칠 수 있을 정도다. 25일 가게를 찾은 한 단골은 “건물이 작고 심하게 낡았어도 음식과 식탁, 식기는 얼마나 깨끗하고 정갈한지 모른다”며 “대부분 소문을 듣고 오거나, 나처럼 오던 사람들이 계속 오는 식당”이라고 말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뜨내기들이 가던 걸음을 멈추고 일부러 들르는 곳은 아니란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것이 초가집은 언제 지어졌는지 가늠하긴 힘들 정도로 오래된 주택을 활용한 국숫집이다. 이 때문에 30석 남짓한 자리 대부분 신을 벗고 오르는 좌식이다. 초가집 대표 김영애(62)씨는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는 한 스님이 ‘공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오래된 집’이라고 귀띔해 준 적이 있다”며 “그 이야기도 있고, 또 변하지 않는 옛 모습이 정감 있다는 분들이 많아 30년 전 가게를 시작한 당시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님이 대를 이어 찾는다

시설은 이래도 맛은 공주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 이곳 단골 김민정(52)씨는 “맛에 치장을 거의 안 한 탓에 처음 접하면 특별한 매력을 느끼기 힘들 수도 있다”며 “깔끔하면서도 투박한, 꾸미지 않은 맛이 초가집 칼국수의 최고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변하지 않는 맛과 분위기에 부모 손을 잡고 왔던 어린이 손님들이 이제 어엿한 어른이 돼 다시 찾아올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올해로 30년째 면을 직접 뽑고 있는 김 대표는 이 일이 평생의 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편의 사업장을 찾은 손님들을 맨입으로 돌려보내기가 미안해 시작한 게 면을 뽑아 삶아 내는 일이었다. 맛을 본 많은 이들이 ‘칼국수 장사를 해도 되겠다’고 치켜세우는 통에 ‘속는 셈치고 한번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결혼하면서 공주로 삶터를 옮긴 그는 이전까지 인천의 평범한 은행원이었다.

김 대표는 이렇다 할 비법이나 레시피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만의 요리법을 개발했다. 밀가루를 이렇게 저렇게 섞어 보고, 다양한 방법으로 반죽해 삶아 내면서 나름의 조리법을 완성했다. 어찌 보면 남편 사업장을 찾았다가 국수 한 그릇을 뚝딱 비운 뒤 한마디씩 둘러댄 모든 손님들이 김씨의 교사인 셈이다. 김 대표는 “중력분으로 면을 뽑으면 쫄깃한 맛이 덜해 생면을 사용하다 다시 강력분과 다른 밀가루를 섞었더니 지금과 같은 면이 나왔다”며 “요리에 직접 훈수를 해준 사람은 없었고, 손님들의 반응을 살피면서 진화한 조리법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라고 말했다.

비결은 “모든 걸 한결같이”

30년 전 모습 그대로의 가게와 김 대표가 스스로 터득해 쌓은 조리법 외에도 초가집의 장수 비결은 또 있다. 변하지 않는 최고의 식자재다. 국수 국물을 내는 데에는 경남 남해산 멸치와 직접 담근 간장, 파뿌리, 무, 생강, 마늘 등이 들어간다. 김 대표는 “우리 가게에 멸치를 대는 분은 현금 아니면 안 받는데도 30년째 거래를 유지하고 있다”며 “밀가루, 돼지고기 등 다른 거래처도 웬만해선 바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역에 밀가루가 많아 국수를 하는 집이 많아졌고, 한때 골목 안쪽으로 중동칼국수, 보문칼국수 등 공주에서 내로라하는 국숫집이 즐비했다. 그러나 공주 인구가 크게 줄면서 지금은 대부분이 사라지고 없는 상황. 김 대표는 인구 감소와 함께 쪼그라든 업황에도 불구하고 영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공을 직원들에게 돌렸다. “언니(직원)들이 자기 가게인 양 친절하게 손님을 대한 덕분이죠.” 손님들이 주방 안쪽에서 일하는 자신보다 밖에서 서빙하는 직원들과 더 빈번하게 접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톡톡히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공주시 관계자는 “대도시의 소문난 칼국숫집들이 불친절 문제로 지역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때 더욱 빛을 발하는 곳이 바로 초가집”이라며 “직원들이 가게와 함께 늙어 간다는 것도 이 가게의 장수 비결”이라고 말했다.

가게와 같이 늙어 가는 직원들

실제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 김입분(62)씨와 박점순(63)씨는 올해로 초가집에서 김 대표와 일을 한 지 각각 30년, 24년째다. 김 대표는 “오랜만에 찾은 손님들이 ‘엇, 이모 아직도 일하시네요’라고 놀라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식자재 거래처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바꾸지 않는 것도 가게를 계속할 수 있는 큰 이유”라고 말했다. 김씨는 자신의 어린 아들을 보면서 김 대표의 아이를 봐주던 동네 동갑 친구이고, 박씨는 김 대표가 공주로 시집을 와서 살던 신혼집의 집주인이었다. 김씨는 “사장이 직원들에게 잘해 주는데 어떻게 직원이라고 해서 일을 허투루 하겠느냐”고 했고, 박씨는 “서로 객지에서 만났어도 가족보다 더 가족같이 속 털어놓고 살던 사이”라며 이구동성으로 “사장이 일 그만두는 날이 우리 은퇴하는 날”이라고 말했다.


지역에서 존경받고 성장하는 초가집을 중소벤처기업부가 ‘백년가게’로 지정하고, 공주시도 ‘으뜸 공주 맛집’으로 지정해 놓고 있지만 이 칼국숫집이 언제까지 지속할지는 알 수 없다. 김 대표의 딸(30)은 ‘엄마 고생하는 모습을 다 지켜봤는데, 어떻게 그걸 나더러 물려받으라고 하느냐'며 대를 잇는 데 부정적이다. “딸 인생은 딸의 것인데 제가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지금 직원들과 할 수 있는 날까지 하다가 같은 날 다 같이 은퇴하는 것도 방법이죠.” 김 대표의 말에 같이 늙어 가는 직원들의 웃음소리가 좁은 가게를 가득 채웠다.


공주=글·사진 정민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