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처한 사람을 볼 때 어떤 이는 동정심을 느낄 것이고, 어떤 이는 그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 보려 노력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누군가의 고통을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워 회피하려 들지 모른다. 이런 유형의 내적 경험을 가리켜 '공감'이라 하는데, 영국 노팅엄대학교의 건강심리학자 퍼거슨 교수에 따르면 공감은 이를 받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 모두에게 심리적 안녕과 장수라는 혜택이 따르며, 구성원들 간 긍정적 상호작용을 유도함으로써 사회 전체의 성숙과 성장이라는 이득을 준다.
울고 있는 사람을 보면 덩달아 눈물이 나는 등의 일차적 수준의 자동적 공감은 논외로 하고, 공감이 일어나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먼저 고통에 처한 사람의 상황을 인지하는 '인지적 공감'이 필요하고, 그 사람의 정서적 상태를 느끼는 '정서적 공감'이 필요하다. 인지적 공감에는 상대방이 어떨지 상상하는 능력과 자신이 그 입장이라면 어떨지 상상하는 능력이 고루 관여한다. 한편 정서적 공감에는 타인에 대한 동정심과 연민을 느끼는 '정서적 관심'과 고통에 처한 사람을 볼 때 느끼는 '공감적 고통'이 관여된다. 이러한 섬세한 과정을 두루 거쳐야 고통에 처한 사람을 돕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져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누구에게나 공감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통념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최근 퍼거슨 교수와 같은 공감 연구자들을 통해 밝혀졌는데, 현대 사회에는 타인의 고통에 적절한 수준의 공감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잖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공감 과정 중 어느 하나에서라도 결함이 있다면, 고통에 처한 사람으로 인해 유발된 자신의 고통을 피하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거나, 다른 위안거리를 찾아 관심을 이동시키기도 하며, 심지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오히려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이도 있다는 것이다.
사회 안에는 여러 사람이 공존하므로, 공감 특질 면에서도 낮은 능력치부터 높은 능력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을 것이고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인물을 가려 뽑을 때 이 공감 능력은 매우 중요한 자질이자, 꼭 필요한 특질이 된다. 달리지 않으려는 사람을 육상선수로 뽑지 않듯이, 음치를 가수로 뽑지 않듯이, 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책임 있는 자리에 합당한 인물을 좋은 학벌, 높은 지능과 뛰어난 언변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을 인지적·정서적으로 균형 있게 공감할 줄 아는 리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 한 주간 장애인 단체의 서울 지하철 시위로 SNS가 뜨거웠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 약속이 지금껏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해 지난 20년간 쌓인 울분이 시위로 이어진 작금의 상황은 정권이 몇 차례 바뀌어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의 어둡고 아픈 단면이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이유 있는 행동에 대해 모종의 프레임을 씌워 본질을 왜곡하거나, 잘잘못을 따지는 차가운 이성보다 무엇 때문에 비롯된 문제인지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따뜻한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람들의 공감 수준은 바로 그 사회의 성숙도와 건강성과 연결됨을 기억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