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초반에 공공기관장 사퇴 압박이 대대적으로 진행됐다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수사를 담당한 서울동부지검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동부지검은 최근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과 관련해 산업통상자원부와 산하 공공기관 8곳을 전격 압수수색한 것을 시작으로 총 5개 정부 부처로 수사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이 3년 전 고발 접수한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을 대선 직후 꺼내든 배경과 함께, 현 정부를 정면 겨냥한 검찰 수사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31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정부 부처 전방위 수사는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 최형원)가 맡고 있다.
시발점은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이다. 2017~2018년 산업부가 산하 공공기관장 8명을 압박해 임기 도중 사표를 받아낸 의혹이 있다며 2019년 1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백운규 전 장관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건이다. 수사팀은 지난 25일 산업부를 전격 압수수색한 데 이어 28일엔 한국전력 발전 자회사 4곳(남동발전 남부발전 서부발전 중부발전)과 이명박 정부 시절 산업부 국장급이 사장으로 있던 공공기관 4곳(한국광해광업공단 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에너지공단 한국지역난방공사)을 동시다발적으로 압수수색했다.
블랙리스트 의혹 수사는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일부, 국무조정실로도 확대된 양상이다. 역시 해당 부처들이 현 정부 초기에 산하 기관장들에게 사퇴를 압박했다는 의혹으로, 자유한국당이 2019년 3월 홍남기 부총리(전 국무조정실장),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전 과기부 장관) 등 11명을 직권남용 및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전직 기관장들의 피해 증언도 잇따르고 있다. 임기 2년 2개월가량을 남기고 하차한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은 한국일보에 "당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관계자가 전화로 사퇴할 것을 통보했다"며 "청와대에서 이미 경질하기로 결정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전직 국책연구원장은 "(인사 과정에) 불법적인 일이 있었다면 처벌이 이뤄지지 않겠나"라며 "필요하다면 검찰 조사에서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동부지검은 한동훈 검사장(사법연수원 부원장)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고발장이 민원 접수 단계에서 반려된 일에 대한 진상조사도 진행하고 있다. 한 검사장은 지난해 9월 추 전 장관이 재직 시절 감찰 자료 등을 불법 누설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며 공무상비밀누설,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등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고발했지만 고발장은 수리되지 않았다. 이에 한 검사장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장을 접수했고, 이후 사건은 대검찰청과 경찰청을 거쳐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에 배당됐다.
서울동부지검 관계자는 "접수 담당 직원이 고발 내용에 공수처 전속 관할 사항이 포함된 걸로 판단해 (한 검사장에게) 공수처에 고발장을 접수하도록 안내한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고발인은 미접수 경위를 다르게 주장하고 있어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