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차기 총리 후보군에 속한 자민당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과 다카이치 사나에 정무조사회장이 연금생활자에 대한 5,000엔 지급 방안을 두고 공개적으로 부딪쳤다. 당정협의 과정에서 모테기 간사장과 상의하던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이번엔 다카이치 정조회장의 손을 들어주며 무마할 만큼 두 차기 주자 간 갈등은 일본 정가의 관심거리다.
31일 아사히신문과 지지통신 등을 종합하면, 지난해 10월 말 중의원 선거 후 아마리 아키라 전 간사장의 후임으로 취임한 모테기 간사장은 다카이치 정조회장과 당 정책 주도권을 놓고 갈등을 빚어 왔다. 간사장은 당 운영, 정조회장은 정책을 맡도록 돼 있으나 모테기 간사장이 정책 사안도 상의 없이 기시다 총리에게 직접 제안하면서 다카이치 측의 불만이 쌓여 갔다. 총재(총리 겸임)를 제외하면 집권당 서열 1위인 간사장이 내용에 개의치 않고 총리와 직거래하는 셈이다.
기시다 총리 역시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지원을 받고 자신과 맞섰던 다카이치 정조회장과는 거리를 두고, 아소 다로 부총재나 모테기 간사장과 자주 만나 정국운영에 대한 논의를 해 왔다. 두 사람은 아베파에 이어 의원 수 2위를 다투는 아소파와 모테기파의 수장이다.
반면 다카이치 정조회장은 과거 한 번 탈퇴한 적 있는 아베파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취임 직후 중의원 선거 공약을 만들면서 총재 선거 당시 자신이 내세웠던 공약은 강조하고 기시다 총리는 견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앞두고는 ‘외교적 보이콧’을 빨리 하라며 총리관저로 들어가 따지는 등 총리와 각을 세우는 듯한 모습도 자주 보였다.
기시다 총리로선 아베 전 총리나 강경보수파의 색깔이 짙은 다카이치 정조회장과 정서적으로 가까운 편은 아니다. 그런 기시다 총리의 태도가 바뀐 것은 모테기 간사장이 제안한 연금생활자에 대한 5,000엔 지급안이 여론의 역풍을 맞으면서다. 앞서 모테기 간사장은 연립여당 공명당과만 의논하고 이 방안을 총리에게 건의했다. 4월 1일부터 연금액이 소폭 감소하는데,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소비자 물가가 오르니 연금액 감소분과 비슷한 5,000엔을 일시 지급하자는 제안이었다. 하지만 물가 상승의 피해는 국민이 보는데 연금생활자에게만, 그것도 용돈 수준의 돈을 6월에 지급하는 것은 너무 노골적인 ‘선거용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이 비등했다.
다카이치 정조회장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16일 기자회견에서 “(모테기 간사장이) 당연히 연락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아직도 연락이 없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다음날에는 총리 관저를 찾아가 “당 규칙에 정책은 정무조사회가 담당하는 것으로 쓰여 있다”고 따졌다.
여론마저 비판적으로 흘러가자 기시다 총리는 5,000엔 지급안은 재검토하고 물가 상승에 대비한 경제 대책을 마련하자고 방침을 수정했다. 28일 당 임원회의에서는 “당에서 ‘정조’ 중심으로 긴급 대응책 논의에 들어가자”고도 했다. 다카이치 정조회장은 30일 “당 소속 의원의 견해를 모아 정부에 효과적인 정책을 제안하도록 논의하는 것은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당내에서도 지도부 내 불협화음을 회복하자며 후쿠다 야스오 총무회장 주최로 모테기 간사장과 다카이치 정조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당 4역’ 간담회가 열렸다. 하지만 각자 신념이 강하고 성격도 맞지 않는 데다 서로를 불신하는 두 사람 간 갈등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모테기 간사장에 가까운 중견 의원은 “물과 기름 같다. 대립이 표면화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