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평양 남진주'라는 말이 있다. 남쪽을 대표하는 예향으로 북한 평양과 어깨를 나란히 한 도시가 경남의 진주다. 바로 그곳에서 수천 년 이어온 한국 채색화의 물줄기를 좇는 전시 '한국 채색화의 흐름'이 한창이다. 부제는 '참(眞) 색과 참 빛이 흐르는 고을(晉州)'. 6월 19일까지 국립진주박물관과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열린다.
전시에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가나문화재단 등 쟁쟁한 기관 14곳과 개인소장가가 보유한 작품 72점이 나왔다. 한국미술사에서 손꼽히는 주요 채색화 작품을 선보인다는 점에서도 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전시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이원복 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등 미술계 전문가 10여 명이 머리를 맞댄 덕분이다.
먹빛 일색의 수묵담채화부터 근래의 단색화까지, 한국미술에는 색이 없다는 선입관을 거두고, 우리 전통의 채색화 계보를 다시 세우자는 취지다. 이를테면 조선시대 민화에 대한 납작한 이해를 넓히면서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미술사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에 의해 '실용을 목적으로 무명인이 그렸던 그림'으로 폄하된 민화를 채색화의 한 갈래로 복원하고자 한다.
전시작 중 리움이 소장한 이후 한 번도 외부에 공개한 적 없는 민화 '일월부상도'를 주목해 봐야 한다. 임금이 앉는 용상 뒤에 뒀던 궁중회화 '일월오봉도'를 영·정조 시대 이후 민가에서 변용해 걸었던 게 '일월부상도'다. 정준모 전 학예연구실장은 "유럽의 시민혁명이 루브르궁을 미술관으로 만들어 시민의 품으로 돌려줬듯 황실의 미술이 민가로 내려온 '일월부상도'는 한국적 근대국가로의 이행기에 나타난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전시는 한국 전통 색의 기원을 고구려 고분벽화까지 끌어올린다. 고려 공민왕의 '천산대렵도', 조선의 김홍도·신윤복과 채용신·김은호를 거쳐 장우성·김기창·박생광·천경자·박노수·박래현·이숙자·원문자·황창배 등 근현대까지 한국 채색화의 맥락을 살피고 정리한다.
여성을 그린 작품이 많은 것도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지방의 전시에서는 보기 힘든 고려 불화 속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진 관음보살, '공민왕 영정'의 노국대장공주 초상, 조선의 논개·춘향·아랑의 초상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당대 여성들의 삶을 반추해볼 기회다.
한국 채색화를 도시 이미지 전략으로 채택한 진주시는 앞으로 풍경·인물·화조·영모 등 주제와 소재별 전시를 이어가고, 한·중·일 채색화 전시 등도 개최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