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도 영원할 수는 없다... 언젠가는 비트코인이 '킹 머니' 자리를?

입력
2022.04.02 10:00
17면

편집자주

암호화폐와 가상자산은 금융의 미래일까, 도박같은 거품일까. 블록체인, 비트코인, 이더리움 NTF의 동향과 다양한 논쟁을 소개한다.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의 꿈

국제 금융시장에서 달러는 왕이다(Dollar is King). 달러가 통용되지 않는 시장은 없다. 개인, 기업, 국가 차원에서 재무적 필요에 의해 달러를 비축한다. 이른바 리저브 커런시(Reserve Currency), 즉 준비통화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국가의 준비통화는 곧 달러였다.

IMF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보면 '킹 머니', 달러의 힘이 예전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국가별 외환보유액 중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이 73%에서 꾸준히 줄어들어서 지금은 58%로 내려왔다.

다음 왕은 누가 될 것인가? 디지털 자산시장에서 한 가지 놀라운 일이 최근 벌어졌다. 코인의 가치를 뒷받침하는 준비 통화로 달러가 아닌 비트코인을 택한 것이다.

# 테라의 반란

암호화폐 프로젝트 중 '테라'가 있다. 한국인 권도형 대표가 이끌고 있는 블록체인이다. 테라는 '스테이블코인'(stablecoin)도 운영한다.

코인은 가격변동이 심하다. 그래서 금융거래를 하려면 불편하다. 이런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1달러에 가격을 고정하고 암호화폐 특징은 그대로 사용하는 코인을 스테이블 코인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액만큼 달러나 미국채를 예치하고 그만큼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했다. 그래서 스테이블코인을 가져가면 해당 액수만큼 달러로 바꿔줬다.

테라는 UST라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한다. 1UST가 1달러다. 그런데 테라는 달러를 예치하지 않고 UST를 발행한다. 달러를 예치하지 않고도 수학적 알고리즘을 통해 달러와 고정된 UST를 발행한다. 상식적으로 볼 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다. 이것을 믿고 UST를 블록체인금융인 디파이의 수단으로 쓰는 프로젝트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UST는 루나(LUNA) 코인으로 교환된다. 1UST가 1달러보다 높으면 사람들은 UST를 팔아 LUNA를 사서 이득을 취하고 1UST가 1달러보다 가격이 낮으면 LUNA로 UST를 사면 이득을 보도록 수학적으로 설계돼 있다. 이 때문에 1UST가 1달러에 고정된다.

당연히 UST의 가치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달러가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격하락의 악순환이 일어나면 제로가 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테라는 이런 의심을 잠재우고, 안정적으로 그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30억 달러 규모의 기금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30억 달러를 은행에 예치했을까? 아니다. 테라는 그 돈으로 비트코인을 사고 있다. 한국은행이 달러와 금을 보유하듯이 테라는 비트코인을 보유한다. 다시 말해 UST의 준비 통화는 달러가 아니라 비트코인이다.

#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이 꿈꾸는 세상

권 대표는 비트코인 100억 달러어치를 매입하겠다고 공언했다. 비트코인을 준비통화로 만들겠다는 것은 창립자 사토시 나카모토 이후 모든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의 꿈이다.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은 비트코인을 킹머니로 만들려는 사람들이고, 이 꿈이 언젠가는 실현될 것으로 믿고 있다.

지금 기축통화인 달러는 미국 정부가 찍어내는 돈이다. 방만한 통화 재정 정책을 쓰면 발행량이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다. 지금 상황이 그렇다. 2008년 금융위기 전보다 발행량이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반면 비트코인은 발행량이 2, 100만 개로 제한된 희귀자산이다.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인 이유다. 이론적으로 비트코인은 금처럼 종이돈(피아트 머니)의 가치를 담보해주는 국가 준비통화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물론 이 같은 이론은 아직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금보다는 나스닥의 기술주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변동성도 크다. 준비통화는커녕 위험자산 취급을 받고 있다.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해 비트코인 커뮤니티의 지원과 환호를 받고 있지만 700만 명도 안되는 적은 인구에 IMF 등 국제금융기구의 견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바로 이런 상황에 테라가 등장한 것이다.

# 내가 왕이 될 상인가?

디지털 자산시장에서는 UST를 이용해서 탈중앙금융(디파이) 상품을 만들었다. 앵커프로토콜이라고 하는 블록체인 대출 프로젝트는 동종업계 1위에 오른 바 있다.

이처럼 테라 블록체인을 이용한 생태계가 급성장함에 따라 UST의 발행량도 급증하고 있다. 성장률 면에서는 다른 스테이블코인을 압도한다.

비트코인은 암호화폐의 원조지만 이더리움 등 다른 블록체인에 비해 약점도 있다. 스마트 컨트랙트 기능이 극히 미미하다. 스마트 컨트랙트를 도입한 이더리움 네트워크 위에서 디파이, NFT 등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꽃피는 것과 비교하면 뭔가 허전하다.

이런 비트코인에 테라라는 지원군이 생긴 것이다. 기술적으로 진보한 것으로 평가받는 테라 네트워크가 비트코인을 자신들의 세계에서 준비통화로 삼겠다고 선언했기 떄문이다.

비트코인과 테라 연합은 정부규제와 관련해 다른 코인에 비해 비교적 자유롭다. 시장은 규제의 양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투명한 규제가 시장발전을 촉진하는 측면이 있는 반면, 자율적인 프로그램이란 블록체인의 특성이 규제로 제한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은 그래서 알트코인을 '똥코인'이라 비판한다. 비트코인은 정부가 막을 수 없는 반면 알트코인은 정부규제로 언제든 문을 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특정한 어느 누구에게도, 어느 기업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완벽한 탈중앙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다른 코인들은 특정 기업이나 개발자 개인의 주도로 개발이 되고 있어 정부가 이들만 규제하면 사실상 금지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비트코인은 투자 규제는 받을 수 있어도 당국이 근본적으로 금지하는 게 불가능한 반면 다른 코인들은 존망의 위기에 처한다.

테라는 다른 프로젝트들이 당국의 눈치 보기에 급급한 것과 달리 당당한 입장이다.

권 대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법적분쟁을 벌이고 있다. 권 대표는 "규제 당국은 앱스토어나 웹사이트처럼 중앙화된 주체는 통제가 가능하지만 태생부터 탈중앙화 시스템을 구축해 300만 개 이상의 계정이 참여하는 테라는 통제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테라는 금전적 이익을 위해 미리 토큰을 채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어떠한 운영 키도 통제한 바 없다. 오로지 투자자들의 합성자산 거래를 도왔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흡사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듯하다. 비트코인과 테라 연합은 화폐의 세계 새로운 왕국을 열고 있다.

# 달러는 기우는 태양

달러가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만 도전을 받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20년 전부터 서서히 떨어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간한 3월 24일 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달러 비중은 최고 73%에서 58% 선으로 내려왔다.

달러 대신 준비통화로 힘을 키우고 있는 돈은 뭘까?

달러 대신 보유하는 외환 중 4분의 1은 중국 위안화로 바뀌고 있다. 나머지는 상대적으로 경제 규모가 작은 국가 통화들, 비전통적인 통화다. 보고서는 호주달러, 캐나다달러, 싱가포르달러, 한국 원화, 스웨덴 크로나 등을 열거했다.

보고서는 "외환보유액 중 적어도 5%는 비전통적인 통화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적으로 준비통화는 지난 20년간 달러 중심에서 서서히 바뀌고 있다. 중국 위안화의 역할이 완만하게 커지고 있다. 시장 유동성, 상대 수익, 준비금 관리 등이 변화하면서 비전통적인 통화의 매력도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위안화의 역할이 커지고 있지만 확산 속도는 느리다. 국제 금융 결제망 스위프트에 따르면, 위안화는 글로벌 거래에서 5번째로 많이 쓰이는 통화로, 직전 연도와 순위가 같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외환보유액 중 달러를 얼마나 가져갈 것인지, 다른 대체 통화나 금 등으로 준비금을 다변화해야 할 것인지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서방의 경제 제재에 대한 맞대응으로 석유 수출 대금을 루블화로 직접 결제하거나 비트코인 등 대체 통화를 쓸 수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말

달러가 기축통화, 대표적인 준비통화의 힘을 갖게 된 것은 2차 세계대전 직후다. 여기에 원유 결제 대금을 달러로 하는 '페트로 달러' 시스템이 가세한 것은 1974년 이후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전 세계는 달러 중심 시스템으로 재편됐다. 금 1트로이온스를 35달러에 연동시키는 금태환 제도를 미국이 도입했다.

다른 통화들은 달러와 환율이 고정되는 시스템이다. 금이 달러가치를 뒷받침하고 다른 통화는 이와 연동하는 변형된 금본위제인 셈이다.

브레튼우즈 체제로 불리는 이러한 미국 달러 중심 시스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려움을 겪게 된다.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대외원조, 경기부양, 베트남전 전비 마련 등 다양한 이유로 달러 발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충분한 금을 보유하지 않고 달러를 발행하고 있다는 의심이 커졌다. 각국은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금으로 바꿔 달라고 미국에 요청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더 이상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한다. 1971년 닉슨이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는 금태환을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이제 달러는 금과 관계 없는 종이일 뿐이다.

미국은 1974년 사우디를 끌어들인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가안보를 책임져 주는 대신 석유수출대금을 달러로 받기로 협정을 맺는다. 페트로 달러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달러를 뒷받침하는 축의 하나인 페트로 달러도 위기를 맞이했다. 사우디는 중국과 석유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다는 말을 흘린다.

달러는 더 이상 강력하고 유일한 준비통화가 아니다. 그렇다면 다음 왕좌에는 누가 앉게 될까? 아마도 디지털 경제 시스템과 이에 맞는 시대정신이 그 돈을 점찍게 되리라.



최창환 프로메타 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