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 파견 개발자는 월급 170만원 받고 300만원 가까이 떼였다

입력
2022.04.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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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28>신규 개발자 팔아 임금 착복 IT파견업계
초급 개발자 경력 부풀려 파견, 인건비 차액 착취
피해 개발자 일했던 업체 찾아갔더니 "취재 거부"
20년간 개발자들 피해 쌓여 가도 제재 법률 없어


"신입 개발자 중간착취 문제를 여쭤보러 왔는데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정보기술(IT)산업 지구인 서울 금천구의 '가산디지털단지'. 지난달 23일 가산디지털단지의 높은 빌딩숲 사이에 위치한 A업체를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

2018년부터 이곳에서 1년가량 일했던 김유권(가명·32)씨의 첫 직장이자, 그에게 뼈아픈 '임금 중간착취'의 기억을 남긴 곳이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대학 졸업 후 소프트웨어(SW) 개발자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A업체에 고용된 뒤 월 170만 원을 받았다.

IT인력파견을 하는 A업체는 아무런 경력도 없던 김씨를 5년차 개발자로 원청에 소개했다. 김씨에겐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정보처리기술 자격증이 있어 이 정도는 관행"이라고 일러뒀다. 5년차 개발자는 중급 개발자에 해당돼 원청에서 월 450만 원 정도의 인건비를 할당한다. A업체는 김씨를 팔아 월 300만 원에 가까운 금액을 쉽게 챙긴 것이다.

개발자는 높은 연봉을 받는 잘 나가는 직군이 되었지만, 이들마저 한쪽은 중간착취의 사슬에 묶여 있다. 아무 기술력 없이 신규 개발자들의 피를 빨아 번성하는 IT인력파견업체는 정치권 및 정부 당국의 무관심과 관련법의 부재 속에 20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다.



아무도 제재하지 않는 업체, '중간착취' 물으니

기자는 A업체 사무실을 찾아 한 직원에게 김씨의 이야기를 전하고 사실확인을 요청했다. A업체의 사무실은 분주해졌다. 잠시 후 다른 직원이 나와 말했다. "대표님도 자리에 없고 다른 임원들도 모두 회의 중이라 답변을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으나 "내부 논의가 필요하니 이번 주 내에 연락을 주겠다"라는 말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다시 A업체에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했다. 반론 차원에서 해명이라도 해달라는 요청에도 "대표님이 응하지 말라고 했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법에 파견 수수료 상한 규정이 없어 월급보다 많은 금액을 중간착취해도 불법이 아니다 보니 기자의 취재 정도는 무시하면 그만이다. 한국일보와 1년 전 인터뷰했던 개발자 이모(31)씨는 "서울 구로·가산 쪽 소규모 인력파견 업체는 90%가 인건비를 떼먹는 방식으로 굴러가는 '인력 보도방'"이라고 단언했을 정도다. 차별적인 표현이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인력파견 업체를 유흥업소에 여성을 소개하는 '보도방'처럼 원청업체에 개발자를 공급한다는 의미로 'IT 보도방'이라 낮잡아 부른다.

경력 부풀려 수백만 원 임금 떼기 만연

"일감을 받아 소개하는 아웃소싱 업체는 대부분 경력 뻥튀기를 한다고 봐야 합니다."

IT인력파견업체에서 10년 이상을 일했던 전용대(가명)씨의 말이다. IT기업이라지만 자체적인 프로그램 개발이 아닌 외부에서 사업을 수주, 여기에 인력을 소개하는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파견업체에서는 인건비의 약 10~20%가량인 소개 수수료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경력 뻥튀기가 주요한 중간착취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개발자를 경력에 따라 초급(1~3년·월 200만 원), 중급(4년 이상·월 450만 원), 고급(10년 이상·월 600만 원)으로 나눠 이에 맞는 단가를 준다. 원청은 단가대로 임금을 내려주지만, 파견업체는 초급 개발자를 고용했으므로 초급 단가만 준다. 나머지는 파견업체의 몫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경력 뻥튀기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2020 소프트웨어(SW) 프리랜서 근로환경 실태조사(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프리랜서 개발자 3명 중 1명(35.3%)꼴로 허위경력 기재를 요청받은 경험이 있었고, 요청을 받은 이들 중 80%는 응했다. 즉, 그만큼 중간착취에 노출됐다는 뜻이 된다. 프리랜서라곤 하지만 사실상 파견·도급업체에 고용된 이들이다.

예치금 명목으로 돈 뜯고 각서까지

IT인력파견업체는 교육비와 중도이탈 방지 명목으로 구직자에게 돈을 받기도 한다. 2017년 B업체 소속으로 개발자 생활을 시작했던 최민오(가명·33)씨는 회사로부터 10만 원의 '예치금'을 요구받았다. 1년 이상 일하면 돌려준다고 설명했지만 이는 법 위반이다.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계약 불이행에 대한 위약금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 최씨는 서너 달 후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최씨는 "이력서에는 3년 이상의 경력이 있다고 했지만 개발업무(SI)는 처음인 터라 헤맸다"고 전했다. 원청에서 한 달 후 최씨와의 계약을 해지했다. B업체에서는 계약이 완료되지 않았기에 한 달 월급도 줄 수 없다면서 다음 계약까지 무급대기를 지시했다.

결국 최씨는 개발자의 꿈을 접었다. 그는 말했다. "언론에서는 개발자 숫자가 모자라서 수억 원의 연봉을 주고 모셔 간다는데, 정작 이런 일을 겪으면서 못 견디고 떠나는 신입 개발자들이 많다는 사실엔 관심이 없어요."

B업체의 또 다른 피해자인 신한상(가명·33)씨는 '확인서'를 보여줬다. 한 장은 10만 원의 예치금을 두고 '1년 내 어떠한 이유로라도 포기·이탈시 반환 요구를 하지 않겠다'라고 적혀 있었다. 또 다른 확인서는 경력을 부풀린 이력서를 B업체가 아니라 신씨 본인이 작성, 제출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두 서류에 대해 신씨는 "업체는 어떠한 책임이 없고 '전적으로 모든 책임은 개발자 본인에게 있다'라는 문구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예치금 명목의 돈 갈취는 지금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노동청 등에 신고할 수 있지만 위축된 개발자들은 나서지 못한다.

김환민 민주노총 산하 IT노조 위원장은 "(허위 경력이 드러나면) 파견업체에서 개발자 개인에게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입막음 위한 '협박성 소송'도 빈번

곪고 곪아 오랜 기간 피해자가 쌓이는 동안 IT인력파견업체들은 이런 각서 작성 외에 협박성 명예훼손 소송도 불사하며 개발자들을 단속하곤 한다. 한국일보의 인터뷰에 응한 개발자는 대부분 파견업계를 떠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신상정보나 임금 중간착취를 당했던 회사명을 드러내는 일을 극히 꺼리는 등 몸을 사렸다.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협박 때문이다.

SW프리랜서 개발자 커뮤니티인 OKKY나 IT노조 홈페이지에는 악덕 파견업체를 공유하는 공간이 있다. 후배들이나 동료들은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형성된 자연스러운 공간이다. 이곳의 공유 내용에 파견업체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김환민 위원장은 "IT노조에도 폭로 글을 내려달라고 연락을 하거나 (명예훼손) 고소까지 하는 경우도 많다"라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IT인력파견업체는 자신의 실력으로 일감을 수주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입소문에 치명적이라 이런 글에 굉장히 민감하다"면서 "경쟁업체에서 서로를 깎아내려 헛소문을 지어내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경력직 인력' 원하는 원청선 모르쇠

원청은 이런 현실을 모르는 것일까. 알고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방관한다.

무엇보다 원청은 관리감독 책임에서 자유롭고자 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경력 있는 인력'을 원하면서, 경력 뻥튀기 시장을 열어주었다. IT인력파견업체 직원이었던 전씨는 "애초 발주처에서 투입 조건을 3년 이상 경력으로 제한하는 곳이 많다"고 설명했다. 국비지원 교육 등 다양한 경로로 개발자가 되는 이들이 증가했지만, 정작 신입을 받겠다는 회사는 드물다.

전씨는 "조건이 되지 않는다면 파견업체에서 직장 내 교육을 할 수도 있지만 경력 뻥튀기로 돈을 벌 수 있기에 보통 바로 투입시킨다"고 덧붙였다. 또 "원청도 알면서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묵인하는 것 같다"고 했다.

개발자 신동영(28)씨도 비슷한 분위기를 전했다. 처음으로 파견 나간 프로젝트에서 적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에게 원청 직원이 '개발 처음 해보냐'라고 물었다는 것. 신씨는 "솔직히 고백했더니 그럴 줄 알았다면서 '여기서 제대로 하면 다음에는 부풀린 단가만큼 돈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며 "워낙 다들 그러니 원청에서도 웬만하면 그냥 넘어간다고 한다"라고 전했다.

이종주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이런 노동환경을 두고 "기업은 고급 개발자를 원하지만 시장에는 초급 개발자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신입 육성보다 하도급을 통해서 부족한 인력을 확보하려 한다"고 지적하고 "하청은 수입을 남기기 위해 '임금 후려치기' 방식으로 초급 개발자를 채용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파견 수수료 제한 법안, 낮잠 언제까지

중간착취는 파견업체가 원하는 만큼 수수료를 뗄 수 있는 현행 법에서는 불법이 아니다. 업체가 부풀린 허위 경력으로 높은 단가를 받고 이를 중간에서 챙기더라도 노동자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용우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부위원장)는 "원청에서 사기 등으로 신고할 수는 있겠지만 노동자는 (파견업체와의 계약으로) 정해진 임금을 받았다면 문제를 삼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원청에서도 굳이 사기 혐의로 고소한다든가 하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김환민 위원장은 "원청은 문제가 생기면 다른 파견업체와 계약하면 그만"이라고 전했다.

피해를 입어도 하소연할 곳이 없고 익명이 보장된 온라인 공간에서만 경험을 나누는 개발자들. OKKY를 운영하면서 이런 사례를 수없이 봤다는 대표 노상범씨는 개발자 중간착취에 대해 취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자에게 직접 연락을 해왔다. 노 대표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상황이 비슷하다"면서 "이런 관행에는 분명한 법적인 처벌이 필요하다"고 단언했다.

원청이 임금을 직접 용역·파견 노동자에게 지급하도록 하고, 파견업체는 정해진 수수료만 떼도록 해 부당한 중간착취를 막자는 법안은 국회에 발의돼 있다. 여야 국회의원 5명이 지난해 냈으나, 아직 국회에서는 논의의 첫발도 떼지 못한 상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관계자는 "4월 임시국회가 열리지만, 여야 간사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지방선거로 바빠 관련 법안 논의 전망은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법률사무소 지담 유은수 노무사는 "중간 수수료를 제한하는 규정이 없는 파견법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면서 "근로자에게 가야 할 대가를 파견업체가 과도하게 받아 챙기는 현상을 막기 위한 입법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혼잎 기자
최은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