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서 잘 알고 지내던 분이 운영하는 서점에서 5년 전부터 일했어요. 조그만 서점이라 사장인 그분과 유일한 직원인 저, 달랑 둘뿐이었죠. 하지만 근무는 거의 매일 혼자 했어요. 사장님은 가끔씩 저 퇴근 전에 아주 잠깐 들르거나 아예 얼굴조차 비치지 않는 날이 며칠씩 이어지곤 했죠.
가게가 작긴 해도 혼자 서점을 맡아 관리하는 건 쉽지 않아요. 들어오는 무거운 책들을 일일이 나르고 진열하고, 또 중간중간 손님도 맞아야 하고요.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8시, 9시에 서점 문을 닫을 때까지 홀로 근무하는데, 서점이 쉬는 날은 일요일뿐이에요. 점심시간 빼고 일한 시간을 계산해 보면 일주일에 60시간 넘게 일한 거네요.
그러다 어느 날 사장님이 웬일로 퇴근 시간 전인데 매장에 들어오더니 쭈뼛쭈뼛하더라고요. 그러더니 "이제 그만둬야겠어요"라고 말했어요. 코로나 때문에 장사도 잘 안 되니까 자기가 직접 가게를 볼 테니 나오지 말라는 거예요.
제가 사는 곳은 동네도 좁고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예요. 괜히 일을 키우는 것도 내키지 않아서 좋게 마무리하려 했거든요. 그런데 퇴직금을 할부로 주겠대요. 한 달에 얼마씩 나눠서 주겠다는 거죠. 서점 매출이 높지 않다는 건 이해하지만, 제가 가정 경제를 책임지고 있거든요. 하루아침에 퇴직금도 제때 주지 않고 일을 그만두라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일한 세월이 5년인데, 월급이 항상 같았어요. 일주일에 6일씩 60시간 넘게 일했잖아요. 월급을 시간으로 나눠보니까 최저임금도 안 되더라고요. 5년 동안 최저임금도 인상됐는데… 퇴직금이랑 지금껏 제대로 받지 못한 최저임금도 받을 수 있을까요? 사장님과 저 2명이 다인 조그만 곳에서 일할 때도 못 받은 돈을 청구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A씨(50대 여성)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속기간이 3개월 이상인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적어도 해고 30일 전에 미리 알려야 합니다. 30일 전에 예고하지 않았다면, 30일분의 통상임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이걸 '해고예고수당'이라고 해요. 이 법은 A씨가 일한 곳과 같은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5년이나 일했는데 바로 다음 날부터 나오지 말라며 해고를 한 것이니 당연히 해고예고수당도 받으셔야 합니다.
이제 퇴직금과 최저임금 미지급 건이 남았네요. 보통 A씨처럼 사용자와의 관계가 동네 사람같이 지인인 경우 퇴직금을 차일피일 미루며 시간을 끄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차피 퇴직금 정산이 한 달 이후에 되는 점을 이용해 지급 시점이 돼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시는 곳을 관할하는 고용노동지청에다 진정을 넣는 것입니다. 진정을 접수하면 근로감독관이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지급 지시를 내리게 됩니다. 퇴직금을 분할해서 주겠다는 건 당연히 허용되지 않으니 확실히 받아내실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을 맞춰야 하는 건 사업장 규모에 상관없이 법적인 의무입니다. 이것 역시 사용자와 별도의 절차를 진행할 필요 없이 진정을 접수한 근로감독관이 문제 해결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업장 사정이 좋지 않다거나 다양한 변수로 인해 아주 칼같이 정확하게 미지급액을 받지 못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돈을 지급하도록 감독관이 중재를 이끌어 가죠. 이 자리를 위해선 보통 노무사, 변호사 등의 자문을 받는 게 좋은데, 다양한 시민단체에서 무료 자문을 해주고 있으니 꼭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최저임금을 제대로 계산해서 받아내기 위해선 내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한 일지 등 증거가 중요하겠죠. 보통은 업무일지를 기본적으로 작성하게 돼 있지만, 소규모 사업장이라든가 A씨처럼 거의 혼자 일을 하는 경우엔 일지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어디에든 폐쇄회로(CC)TV가 달려있죠? 이런 영상도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최대한 근무일지 자료를 다 정리한 뒤 요구하시면 됩니다.
또 한 가지 기억하셔야 할 점은 주휴수당입니다. A씨도 처음 일을 시작할 땐 이런 일을 겪게 될 거라고 생각 못 하셨을 겁니다. 입사하면서 계약서를 쓸 때는 몰랐다가 나중에 그만두게 될 때 이것저것 따져보니 못 받은 수당이 있다는 걸 깨닫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주휴수당도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는 제도이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대표적인 항목입니다.
근로기준법 제55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일주일에 1회 유급휴일을 보장해야 합니다. 해당 휴일에 대해 유급 처리가 되는 금액이 바로 주휴수당입니다. 1주일 근로 시간이 15시간 이상이고 1주일간 결근 없이 근로했다면 주휴수당 지급 조건이 충족됩니다.
이 주휴수당을 제대로 지급받고 있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경주여성노동자회가 2018년 음식업, 관광업 등 종사자 28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자체 조사에 따르면, 주휴수당을 받고 있는 비율은 23.8%에 그쳤습니다. 주휴수당을 주지 않는 건 즉 임금체불이니 반드시 알고 챙겨야 합니다.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만든 법이 근로기준법이죠. A씨 상담을 통해 제가 안내한 퇴직금, 해고예고수당, 최저임금, 주휴수당도 사실 근로기준법 안에 다 들어가 있는 조항입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은 5인 미만 사업장엔 그대로 적용되지 않아요. 앞서 말한 일부 조항들만 예외적으로 적용됩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조항들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이 되겠죠. 5인 미만 사업장 원칙적 배제가 존재하기에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적용되지 않는 내용으론 대표적으로 연장근로와 휴일근로, 야간근로에 따른 가산수당, 연차휴가입니다. 주52시간제도, 대체 공휴일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조항도 빠져 있죠. 이렇다 보니 일부러 5인 미만으로 속여 신고하는 사업장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최근 고용노동부 점검 결과 직원이 5명 이상이면서 가짜 회사를 여러 개 만든 뒤 직원들을 나눠 소속시키는 이른바 '사업장 쪼개기' 꼼수로 가산수당, 연차휴가 등 의무를 피해간 사업장이 다수 적발됐습니다. 심지어 직원이 400명이 넘는데 사업장을 쪼개 미지급 수당이 5억여 원에 달하는 곳도 있었죠. 의류판매와 음식점업을 영위하는 한 사업장은 무려 36곳으로 사업자등록을 한 사례도 발각됐습니다. 애초 고용노동부는 5인 이상으로 의심되는 사업장 72곳을 대상으로 근로감독을 실시했는데, 얽혀있는 사업장 수가 계속 늘어나 최종 근로감독 대상 사업장이 114곳이 됐고, 그중 총 8곳이 실제로는 5인 이상 일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5인 미만 사업장 예외 조항 악용을 막기 위해서라도, 권익 보호에 비켜나 있는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을 위해서라도, 근로기준법은 확대 적용되어야 합니다. 이 요구는 노동계에서 꾸준히 제기됐지만 전면 적용 법안은 매번 국회에서 보류됐습니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 생겼고, 생계 유지를 위해 강도 높은 노동이라도 뛰어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열악한 상황을 개선하려면 근로기준법을 전면 적용하는 개정이 필요하다는 게 노동계의 목소리입니다. 소규모 사업장이라도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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