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고민

입력
2022.03.30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자국 일로 여기는 나라 중 하나가 북유럽 핀란드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어쩌면 미래의 핀란드에 닥칠 일일 수 있지만 사실 이 나라가 먼저 겪은 일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볼셰비키혁명으로 러시아제국을 무너뜨린 레닌이 '민족 자결' 원칙에 따라 독립을 승인하기까지 핀란드는 오랜 스웨덴 지배와 100여 년 러시아 통치를 받았다. 그러나 가까스로 얻어낸 독립은 잠시일 뿐 1939년 11월 30일 소련의 침공을 받게 된다.

□ 2차 대전 초기 스탈린은 독소불가침조약으로 나치 독일과 동유럽을 나눠 먹으려 했으면서도 공산주의를 적대하는 나치에 대한 불안을 거두지 못했다. 무엇보다 러시아제국 수도 상트페트르부르크에서 불과 수십 ㎞밖에 떨어지지 않은 핀란드 국경을 통한 공격에 예민했다. 이를 저지하면서 발트해 제해권도 확보하기 위해 핀란드에 국경선 조정과 북해 항만 조차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하자 핀란드군을 압도하는 수십만의 병력을 동원해 공격에 나섰다.

□ '겨울전쟁'으로 불리는 이 싸움에서 핀란드군은 절대 열세였으면서도 예상 밖으로 선전해 소련군에 거의 10배 이상의 희생을 안겼다는 점도 우크라이나 상황과 흡사하다. 궁지에 몰린 소련이 침공 한 달여 만에 종전을 타진했지만 평화조약의 내용이 애초 소련이 원했던 국경선 변경이었기에 핀란드는 싸우기를 고집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영국, 프랑스, 스웨덴의 지원이 좌절되면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3개월여 만에 종전에 이르렀다. "무기를 달라"는 젤렌스키의 호소가 오버랩된다.

□ 핀란드는 전쟁으로 국토의 10%인 러시아 접경지를 잃었다. 이후 철저한 중립 정책으로 독립을 유지해왔지만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며 이 중립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다. 사울리 니니스퇴 대통령은 이달 초 미국으로 날아가 조 바이든 대통령과 정상회담한 데 이어 불과 보름 사이 영국 총리, 프랑스 대통령까지 만났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이 선택지에 올라 있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유럽의 지형이 크게 바뀌고 있다.

김범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