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아일리시 열창에 귀가 즐겁고, 영상미에 눈이 호강 [몰아보기 연구소]

입력
2022.04.0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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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플러스 ‘Happier Than Ever: LA로 보내는 러브레터'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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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아일리시(21)에 대한 긴 설명이 필요할까. 2001년생으로 19세에 올해의 앨범 등 그래미상 4관왕에 올랐다. 27일(현지시간) 열린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선 ‘007 노타임 투 다이’로 주제가상을 받았다. 21세기 팝 아이콘이라는 호칭이 과하지 않다.

지명도를 반영하듯 아일리시에 대한 영상물은 넘친다. 실황공연 다큐멘터리 등 영화만 18편이다. 애플TV플러스에선 140분짜리 ‘빌리 아일리시: 조금 흐릿한 세상’(2021)을 볼 수 있다. 아일리시의 일상, 성격 등이 궁금한 이들에게 안성맞춤 다큐멘터리다. 아일리시의 무대 밖 삶 대신 단지 음악에 관심 있다면 디즈니플러스 다큐멘터리 ‘Happier Than Ever: LA로 보내는 러브레터’가 제격이다.

①빌리 아일리시가 사랑하는 LA

다큐멘터리는 아일리시가 지난해 7월 발표한 앨범 ‘해피어 댄 에버(Happier Than Ever)’ 수록곡들을 로스앤젤레스(LA) 야외 음악당 할리우드볼에서 부르는 장면을 담고 있다. 언뜻 보면 공연 실황으로 비춘다. 하지만 관객은 1명도 없다. 할리우드볼을 주요 촬영무대로 삼았을 뿐이다. 아일리시는 LA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1922년 만들어진 미국 최대 야외 공연장 할리우드볼 무대에 서는 게 꿈이었다.

다큐멘터리는 아일리시가 할리우드볼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다양한 영상으로 소개한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묘사된 아일리시가 스포츠카를 몰고 LA 명소를 돌아다니는 모습들이 끼어든다. LA에서 음악의 꿈을 키운 아일리시의 도시에 대한 애정이 담겼다. 이 다큐멘터리의 부제가 ‘LA로 보내는 러브레터’인 이유다.

②두다멜과 함께한 공연

공연실황과 달리 정교하게 연출된 영상들이 이어진다. 관객 없이 통제된 상황에서 만들어진 영상이라 음질이 여느 공연보다 빼어나기도 하다. 유명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이끄는 LA 필하모닉이 연주하며 음반과 차별화한다. 안방 관객 입장에선 세밀하게 준비된 명품 콘서트에 홀로 초대된 기분이다.

‘해피어 댄 에버’ 수록 16곡의 가사를 음미할 수도 있다. 아일리시의 음악에 대한 고뇌, 남성 위주 세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 막 20대 문턱에 들어선 젊은이의 설렘과 고민 등을 읽을 수 있다. 아름다운 선율 속에 감춰진 아일리시의 날카로운 사고가 감지된다.

③공연실황 같은 뮤직비디오러

다큐멘터리는 공연실황 같으면서도 뮤직비디오를 닮았다. 65분짜리 뮤직비디오로 봐도 무방하다. 석양이 물든 LA의 풍광, 어둠 속에서 네오사인이 도드라진 밤거리,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LA 야경 등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LA 명소에 아일리시의 고향에 대한 단상이 겹치는 영상이 이어진다. LA를 한번이라도 들른 이들이라면 아련한 추억을 자극할 만하다. 귀가 호강하고, 눈이 즐거운 영상이다.

※몰아보기 지수: ★★★★(★ 5개 만점, ☆ 반개)
연출은 로버트 로드리게스와 패트릭 오스본이 함께 맡았다. 로드리게스는 영화 ‘데스페라도’(1995)와 ‘씬 시티’(2005), ‘알리타: 배틀엔젤’(2019) 등을 선보인 명장이다. 오스본은 ‘부그와 엘리엇’(2006) 등을 만든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오스카 단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이력을 지녔다. 화면 곳곳에 장인의 손길이 느껴질 만하다. 지난해 앨범 ‘해피어 댄 에버’가 공개된 직후 제작됐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