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 23년째인 해에 희소병인 육종암 진단을 받고 숨진 소방관에게 공무상 재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육종암은 지금까지 소방관에게 발병한 사례가 없는 질환이지만, 소방 업무 여건을 고려하면 업무와 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4단독 조국인 판사는 육종암으로 투병하다가 재작년 숨진 소방공무원 A(사망 당시 50세)씨의 유족이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제기한 공무상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등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A씨는 1996년 소방공무원으로 임용돼 일하다가 2019년 육종암 진단을 받고 이듬해 숨졌다. 육종암은 뼈와 근육 등 근골격계에 발생하는 암으로, 전체 암의 1%에 불과한 희소병이다.
유족은 인사혁신처에 공무상 요양 및 순직 유족 급여 지급을 신청했다. A씨가 화재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장시간 유해물질에 노출된 데다 잦은 주야간 근무를 수행하면서 질병을 얻었다는 이유에서였다. A씨는 1996~2002년을 포함해 8년간 화재 현장에서 진압 업무 등을 수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사혁신처는 그러나 육종암 발병은 화재 현장 업무와 관련성이 없다며 신청을 거부했다. 인사혁신처는 "A씨의 업무 여건과 질병 발생 및 악화 사이의 관련성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유족은 이에 반발해 지난해 6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소방관이 육종암에 걸린 사례는 드물지만, 열악한 업무 환경과 질병 간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A씨가 화재 진압 업무를 수행하던 시절 공기호흡기 등 장비가 충분히 보급되지 않아 각종 유해물질과 발암물질에 장시간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A씨가 비흡연자이고 육종암 관련 기저질환이 없었다는 점, 내근직일 때도 격무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점도 고려했다.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근무하다 희소병인 다발성 경화증을 얻은 이모씨에 대한 대법원 판례도 이번 판결의 근거였다. 대법원은 2017년 이씨의 업무 환경과 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작업 환경에 여러 유해성 물질이나 요소가 있는 경우 개별 유해 요인들이 특정 질환의 발병이나 악화에 복합적·누적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