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인 강제이주 전 심문하는 '여과 캠프' 발견돼

입력
2022.03.29 15:39
잔류 원하는 주민들까지 수용소로 강제 이송
"얼굴 사진 찍고 지문 스캔, 긴 심문도 이어져"
러, "강제 이주 아닌 인도주의 통로 운영" 주장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시민들을 러시아 본토로 강제 이주시키기 전 심문하는 '여과 수용소'(filtration camp)로 추정되는 캠프가 위성 사진에 포착됐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7일(현지시간) 미국 위성업체 맥사가 제공한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베지멘 마을에 형성된 캠프 사진을 공개했다. DPR 측은 23일 공식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자신들이 "마리우폴 주민을 위해 최대 450명을 수용할 수 있도록 텐트 30개를 설치해놨다"고 설명했다. 이 캠프는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남동부 마리우폴로부터 불과 30㎞ 거리에 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 캠프가 마리우폴 주민들을 러시아로 강제 이주시키기 전 사상 검증을 하는 '여과 수용소'라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의회가 낸 성명에 따르면 주민들은 수용소로 끌려가 휴대폰과 개인 정보를 수색당한 후 러시아 외곽 도시로 넘겨지고 있다.

실제 여과 수용소를 거쳐 러시아로 이주된 한 익명의 주민은 우크라이나에 남고 싶어 하던 사람들까지 모두 트럭에 태워져 DPR에 위치한 한 수용소로 이송됐다고 현지 매체 그래티에 전했다. 그는 "수용소에 도착한 후 러시아군이 여러 각도에서 내 얼굴 사진을 찍고 지문을 스캔했다"고 밝혔다. 이후엔 우크라이나 정부와 군대에 대한 생각을 물으며 심문도 했다고 말했다. 이 주민은 러시아 타간로그시로 다시 옮겨진 후 탈출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지난달 24일 전면 침공 이후 러시아가 동의 없이 이주시킨 지역 주민이 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기ㆍ수도ㆍ통신ㆍ음식 등이 모두 끊기고 건물 90%가 파괴된 마리우폴에는 여전히 민간인 17만 명 안팎이 고립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강제 이주가 아닌 인도주의적 통로 운영일 뿐이며, 수용소는 '난민'들을 위한 생명 지원(life-supporting) 캠프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로의 이주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러시아의 주장도 자발적 이주로 볼 수 없다는 분석이다. 러시아군의 공격에 고립된 주민들이 생존할 방법은 사실상 러시아로의 이동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리우폴에서 적십자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이리나는 "내가 만났던 몇몇 노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이동하고 있었다"며 "이들은 러시아 로스토프로 갔다가 마리우폴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더 북쪽 지역인 사마라시로 옮겨졌다"고 영국 BBC방송에 전했다.

장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