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중북부에 위치한 타잉화ㆍ응에안성(省) 사람들은 고향에 대한 자긍심이 높기로 유명하다. 타잉화성은 베트남 현재 권력을 대표하는 팜민찐 총리, 응에안성은 베트남의 국부(國父) 호찌민 전 주석의 고향이다.
한국인의 관점에선 호찌민 전 주석까지는 이해해도, 지난해 선출된 현직 총리의 고향인 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싶을 수 있다. 하지만 베트남 경제분야의 각종 허가 및 결정권을 임기 5년 동안 독점하는 총리의 힘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실제로 응우옌쑤언푹 현 국가주석이 총리였던 지난 2017~2021년, 그의 고향인 중부 꽝남성은 평범한 시골에서 단숨에 주요 산업ㆍ관광도시 반열에 올랐다.
"이제 우리도 부유하게 살 수 있다." 타잉화성의 기대가 수직 상승한 건 당연했다. 타잉화성의 남쪽에 있는 응에안성도 비슷한 산업 입지 조건을 가졌기에 내심 동반 성장을 노렸다. 심지어 응에안성은 국부의 고향이 아닌가. 그동안 정치적 상징성 외에 별다른 발전 이득이 없었으니 뒤늦게라도 '성장의 콩고물'을 받을 명분은 차고 넘쳤다.
베트남에선 '고향 챙기기'가 비판이 아닌 미덕으로 통하니 실행은 빨랐다. 지난해 베트남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중앙당 정치국은 타잉화ㆍ응에안성의 새로운 성장을 위한 투자유치 결의안(58-NQ/TW)을 즉시 통과시켰다.
두 성과 수도 하노이 및 인근 지역을 잇는 고속도로가 신속히 건설됐고, 이들 지역의 작은 공항은 국제공항으로 전환될 예정이다. 동시에 '외국기업 경제특별구역'으로 설정된 두 성의 산업단지는 최상위 투자 조건도 보장할 수 있게 됐다. 상전벽해(桑田碧海)를 꿈꾸는 이들에게 남은 건 이제 누구를, 어떻게 데려오느냐는 것뿐이었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건 베트남이라고 다르진 않다. 두 성 입장에선 4년 남은 찐 총리의 임기를 허투루 보낼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타잉화성은 지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올 초 꺾이기 시작하자 한국과의 접촉을 1순위로 설정했다. 한국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로 단숨에 고소득 도시가 된 ‘롤모델’ 하이퐁시와 빈즈엉성을 따라가려면 하루라도 시간을 아껴야 했기 때문이다.
타잉화성은 코로나19 사태 2년 만에 현지에서 재개된 '2022 미트 코리아'(Meet Korea) 행사 유치에 성공했다. 물론 타잉화성의 강력한 추진 의지 위에, 찐 총리의 '고향 사랑'을 잘 아는 한국 측의 정무적 판단도 더해졌음은 비밀도 아니다. 지난 24일부터 3일 동안 진행된 미트 코리아 행사에는 양국 주요 기관과 10여 개 지방성 정부 지도자, 한국기업 대표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행사 기간 내내 투자 현안에 대한 토론과 다양한 조합의 실무 논의를 동시에 진행했다. 각자의 패를 들고 우대 조건과 투자 여부 등을 꼼꼼히 따지는 자리였던 셈이다.
특히 타잉화성 지도부의 한국기업에 대한 구애는 강력하고 절실했다. 응우옌반띠 타잉화성 인민위원회 부위원장(부성장)은 지난 25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성에 투자하는 한국기업의 이익을 최우선 의제로 두고 모든 절차를 해결해주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위해 투자촉진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하는 것은 물론, 중앙정부와의 마찰도 자신들이 직접 조율하겠다고 약속했다.
응에안성도 지지 않았다. 르응옥호아 부성장은 "중앙정부의 외국기업 투자 지원정책 가이드라인과 별개로 우리 성 차원에서 별도의 추가 세금 감면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단 우리 성을 방문해 달라. 좋은 우대가 뭔지 확인시켜주겠다"고도 거듭 강조했다. 두 성 지도부는 언급의 순서만 조금씩 달랐을 뿐, 인터뷰 내내 '적극적인 대화', '고급 노동력 공급', '행정 안정성 보장' 등의 조건을 줄줄이 내놓았다.
"말만 번지르르한 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지만, 두 성이 가진 투자 환경은 실제로 한국기업에 득이 되는 측면이 있다. 타잉화성은 수도 하노이와 경제중심지 호찌민에 이어 거주 인구(371만 명) 3위 지역이며, 응에안성(336만 명)은 4위다. 이들 중 타잉화성의 노동 가능 인구는 226만 명, 응에안성은 190만 명에 달한다. 이미 포화 상태에 달한 베트남 북ㆍ남부 산업단지가 지나친 노동력 확보 경쟁으로 인건비가 급상승한 상황을 고려하면, 매력적인 신규 투자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베트남 최고'라고 자부한 투자 우대 조건도 사실이다. 한국일보가 두 성의 '투자유치 결의안(58-NQ/TW) 세부 실시 조항'을 확인한 결과, 응이안 공단 등 두 성의 주요 경제특구는 한국기업이 대규모 신규 투자 프로젝트를 현지에서 진행할 시 최초 4년 동안 법인 소득세를 면제한다. 5~13년까지는 5%이며, 14ㆍ15년차에는 10%, 그 이후에는 타 지방성이 일반 기업들에 거두는 것과 같은 20%의 세율이 적용된다.
한국기업이 지역 내 항구를 통해 화물을 들일 경우 컨테이너당 최대 100만 동(한화 5만 원)의 운송비도 지원된다. 공장 건설 기간 동안은 토지 임대료 역시 받지 않는다. 사업이 개시된 이후에는 투자 액수와 사업 분야에 따라 최대 15년까지 면제 기간이 연장되기도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글로벌 분산 투자 경쟁이 심화된 현 시점에선 적지 않은 메리트다.
두 성의 투자 유치 의지와 조건은 분명 훌륭하다. 현지에선 베트남에 진출해 있는 한국기업들과 추가 투자 합의 가능성 또한 높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30일 대한상공회의소 베트남 사무소에 따르면, 현지 진출 한국기업 137개사를 대상으로 올해 1월 실시한 '2022년 사업전망 및 애로사항 설문조사' 결과 응답 기업의 47.8%는 "현지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답했다. 현상 유지는 44.0%, 투자 축소 계획을 가진 기업은 8.2%에 그쳤다. 투자 확대 쪽이 더 많은 이유는 양국 모두 '위드 코로나'(일상 회복 정책)를 기조로 삼는 만큼, 지난 2년보다는 원활한 경영 활동이 가능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당연히 추가 투자 선택지 상단에는 타잉화ㆍ응에안성의 이름이 올라 있다.
두 성이 강조한 '행정 안정성 보장'도 한국기업들이 가장 원하는 부분이다. '베트남 정부가 고쳐주길 바라는 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19.0%는 "기업 관련 법 개정 시 정책 일관성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어 "사업 인허가 검토 기간을 단축하고 각종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기업들도 13.9%에 달했다. 이 조사에서 '기업 전문인력의 출입국 간소화'(34.3%)가 1위로 꼽혔으나, 지난 15일부터 베트남 정부가 한국에서 입국하는 모든 인원에 대해 무비자ㆍ무격리 정책을 적용하고 있어 해결된 상태다.
남은 건 이제 타잉화ㆍ응에안성이 한국을 향해 외친 수많은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지 여부다. 타잉화성에서 4년째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A법인장은 "과거와 달리 성 정부가 민원 해결에 매우 적극적이고 행정 절차가 빨라진 건 사실"이라면서도 "한국기업들의 추가 투자가 본격화되면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등이 초기 진행 상황을 계속 확인해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