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게재를 앞두고 내내 심란하다. 다음 칼럼은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고민 때문이다. 칼럼 제목이 '검사의 소소한 생각'이다. 애초에 대단한 생각 같은 것을 쓰지 않아도 되도록 제목을 정했다. 그저 검사인 내가 살면서 일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대단치 않은 생각을 쓰면 되는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글감은 차고 넘친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떠오르는 글감을 잊지 않기 위해 휴대폰 메모장에 저장해 둔다. 그런데도 달랑 2회째 받게 되는 마감일 앞에 이토록 초조한 이유는 무엇인가.
바야흐로 시대상황이 너무 뜨겁다. 해방 이래 뜨겁지 않은 시대가 있었겠는가마는, 역사상 처음으로 검찰총장 출신의 대통령이 탄생한 것이다. 절반쯤으로 나뉜 각계각층이 각각의 관점에서 기대와 우려가 섞인 제언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점에서 명색이 검사인 자가 쓰는 칼럼에는 무엇이 담겨야 하는가.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혼자 책임감에 밤잠을 설친다.
어떤 날은 넘치는 열정으로 나도 '새 정부에 바란다' 같은 글을 썼다. '어쨌든 검찰총장이 곧바로 대통령이 되는 역사는 서글픈…'까지 썼는데, 그쯤에서 정신을 차린 '검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가 슬며시 손목을 잡는다.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정치적 찬반 의견이 전혀 아니라고 이렇게 저렇게 둘러대느라 검찰의 정치적 독립에 대한 제언은 시작하기도 전에 지친다. 지쳐서 그냥 봄날 꽃놀이 예찬이나 쓰자고 방향을 튼다. 아직 피지 않았으나 이윽고 지천을 가득 채울 꽃들에 대한 기대를 쓰다가 지금 시점에서는 이 역시 정치적 은유로 비칠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행여 '봄이 왔으나 내 마음은 춥다'라고 쓴다면 빼박이다. 더 나아가 애초에 검사라는 자가 이 시국에 꽃타령이나 하고 있는 것 자체가 고도의 우회적 정치 표현이라고 한다면? 고민할수록 자기검열의 피해의식만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그즈음 한 선배가 검사 내부 게시판에 검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내부 구성원들의 논의를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정치적 독립과 중립은 검찰청 마당에 우뚝 서 있는 정의의 여신처럼 고정된 개념이 아니고 끊임없이 진동하면서 그 자리 값을 찾아가는 것이니 이제 우리가 우리 머리로 그 자리 값에 대해 논의해 보자고 선배는 제안했다. 추상이 아니라 현실의 사무실에서 하루하루 마주하게 되는 검찰권 행사의 현장에서 검사인 자는 어떤 기준에 맞춰 일을 하고, 해서는 안 되는가. 선배의 제안에 덧붙여 나도 묻고 싶었다. 검사인 인간은 세상을 향해 무엇을 말하고, 말하지 않아야 하는가
선배의 제안은 높은 조회 수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답이 달리지 않았다. 며칠을 답하지 못하고 서성이면서 다만 이런 종류의 논제에 대해 우리가 매우 서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치적 중립과 독립이 검찰권의 본질이라고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그것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 작정하고 말해본 적이 드물었다. 그에 대한 논의조차 정치적으로 소모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앞에 번번이 위축되었다. 기준을 모르는 자기검열은 끝이 없으므로 치명적이다. 결국 안전하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해 온 결과, 아무래도 곤란한 얼굴로 오늘날의 우리가 여기에 있다. 선배는 언론에다가 어설프게 떠들지 말고 내부 게시판에서 치열하게 논의해 보자고 썼는데 그 글조차 '현직 검사가 뭐 어쨌다'는 제목으로 기사가 되는 것을 보고 그냥 여기다가 쓴다. 그런데 기자님들, 우리도 우리 머리로 생각 좀 해 보게 내부 게시판은 좀 참아주시면 안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