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의 왕' 연상호·탁재영 "학폭 가해자에게 경종 울리길"(인터뷰)

입력
2022.04.02 19:13

재탄생된 '돼지의 왕'이 수십 년간 지속된 학교 폭력의 본질에 더 다가갔다. 성인이 된 학교폭력 가해자와 피해자를 그리면서 원작 이상의 담론을 꺼내 놓았다.

지난달 29일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을 집필한 탁재영 작가와 원작자인 연상호 감독은 본지와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연상호 감독의 동명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돼지의 왕'은 연쇄살인 사건 현장에 남겨진 20년 전 친구의 메시지로부터 폭력의 기억을 꺼내게 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추적 스릴러 드라마다. 작품은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황경민(김동욱), 정종석(김성규)의 인생을 뒤흔든 사건과 20년 후 잔혹한 살인마와 형사가 되어 서로를 쫓는 스토리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탁재영 작가 "김동욱의 사려 깊은 연기 보고 감탄"

먼저 김동욱부터 김성규까지 이미지가 강렬한 배우들의 라인업을 두고 탁재영 작가는 "저는 캐릭터의 이미지 그리고 캐릭터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다는 느낌을 강조하고 싶었다. 캐릭터 설정을 바탕으로 해서 제작사가 김동욱 김성규를 캐스팅했다"라 설명했다.

이와 관련 탁재영 작가는 배우진에 대한 만족도를 크게 드러냈다. 특히 주연 김동욱에 대한 극찬이 이어졌다. 탁재영 작가는 "되게 감탄을 많이 했다. 본인이 맡은 역할을 장르적으로 뿜어내는 것 이상으로 정당성, 죄의식 같은 것들을 표현한다. 되게 사려 깊은 생각들을 많이 하면서 연기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칭찬했다.

이어 "김성규는 앞으로 후반부에 더 큰 감정들이 보여진다. 김성규의 연기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두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가 있지 않았는데도 김동욱과 김성규 캐스팅을 듣고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원작과 다른 점도 화두에 올랐다. 기존 애니메이션과 달리 정종석이 형사라는 설정을 갖게 됐다. 또 스릴러 구성으로 신선함을 기대케 했다. 이 점에 대해 탁재영 작가는 "'돼지의 왕'이 워낙 호평도 많이 받은 작품이고 그리고 좋아해 주는 팬들 분들도 너무 많다. 그래서 원작 팬들 말고도 일반 시청자분들도 재미있게 '돼지의 왕'을 즐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돼지의 왕' 초창기 작품의 팬이었던 탁재영 작가에게 시리즈화에 대한 우려도 존재했다. 실제로 '리부트'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칫 원작 주제의 훼손이 이어질까 하는 걱정이 컸던 터다. 탁재영 작가는 연상호 감독과 많은 대화를 거치면서 원작의 메시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자신만의 색채를 가미했다.

원작은 끔찍한 사건을 겪었던 인물들이 현재의 피폐한 삶을 살면서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회상하는 과정을 그린다. 반면 드라마에서는 끔찍했던 과거를 겪었던 인물들이 성인이 돼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포커싱했다.

특히 드라마에서는 사회 드라마의 성격이 강했던 원작과 다르게 시청자들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스릴러 장르를 같이 접목시켰다. 탁재영 작가는 이 과정에서 원작 애니메이션이 드라마로 확장될 때 필요한 구성을 완성시켰고 연상호 감독도 만족했다. 연상호 감독도 단편 영화였던 '돼지의 왕'이 드라마로 확장될 때 소재나 분량적으로 더욱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은 "탁재영 작가와 스릴러적인 구성 연쇄 살인의 구성으로 가자는 이야기를 같이 했었다"면서 "원작 공개 후 '극중 학교 폭력 가해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다. 탁재영 작가가 이 작품을 실제 구상한다고 할 때 앞서의 질문에 좋은 답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아역 배우들에게 상처될까 우려, 현장 배려 컸다

극중 주인공들이 어린 시절 학교 폭력의 기억을 되짚어가는 과정 등이 다소 잔혹하게 그려지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존재한다. 탁재영 작가는 "성인이 아닌 아역 배우들이 실제로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다행히 제작사 쪽에서 현장에 항상 심리 상담가들을 상주시키면서 아역 배우들과 대화를 많이 나눴다더라. 현실이 아닌 연기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아이들의 마음을 진정시켰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탁재영 작가는 학창 시절 당시 학교 폭력의 상황을 많이 목격했고 그때를 복기하면서 솔직하게 다루고 싶었다고 밝혔다.

두 연출가가 짚은 원작과 드라마가 가진 메시지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연상호 감독은 "대본을 봤을 때 원작과의 메시지 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느낌이 있었다", 탁재영 작가는 "원작에서는 계급 사회 속에서의 여러 가지 역전 현상, 또 감정들을 잘 담아주려고 노력했다. 저도 각색 과정에서 재해석을 하거나 또는 비틀어서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게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했다"고 했다.

'돼지의 왕'은 어른을 위한 스릴러

탁재영 작가는 '돼지의 왕'을 어른을 위한 스릴러라고 바라봤다. 복수의 정당화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극 초반 폭력적인 장면이 삽입됐다. 아울러 '돼지의 왕'은 단순히 학교 폭력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폭력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짚으면서 강자와 약자로 서열화된 세상을 정면으로 조명한다.

인터뷰를 통해 탁재영 작가는 '돼지의 왕'이 학교 폭력 가해자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작품으로 남길 바랐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장난이었을지언정 상대방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연상호 감독 역시 지속적인 학교 폭력 현상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연상호 감독은 성과주의를 중요시 여기는 사회 풍조를 먼저 언급하면서 "학생들한테는 학교라고 하는 세계가 전부다. 사회적으로 앞으로 좀 많이 나아져야 될 것 같다. 또 경험할 수 있는 세계가 지금 있는 곳 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인지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연상호의 원동력? 고정관념 없는 작업 덕분

지금까지의 연상호 감독은 드라마부터 영화, 다양한 OTT 등 각종 플랫폼을 거쳤다. 감독과 작가로서도 활동을 병행하는 중이다. 분야의 다변화를 이끈 원동력에 대해 "업계에 데뷔를 하면서 고정관념 같은 걸 갖지 말자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 창작을 하는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자. 제가 맡은 바에 성실하게 임해서 작업을 한 것이 지금까지 여러 분야를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고 겸손하게 밝혔다.

우다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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