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해선 전철역 중에 ‘오시리아’역이 있다. 해운대에서 기장군으로 접어들어 첫 번째 역이다. 무슨 근본 없는 외래어인가 싶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기장 바닷가의 명소 오랑대와 시랑대의 머리글자에 외국 지명에 흔히 쓰는 접미사 ‘이아(-ia)’를 붙였다. 일대는 대규모 관광단지로 개발 중이다. 2015년 국립부산과학관 개관을 시작으로, 힐튼호텔과 아난티콘도 등 숙박시설, 이케아와 롯데프리미엄아울렛 등 쇼핑시설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31일에는 ‘롯데월드 어드벤처 부산’이 개장한다. 압도적 규모의 현대적 놀이시설이 속속 들어서는 가운데, 정작 오시리아의 어원이 된 원조 놀이터는 존재가 희미해지고 있다.
오시리아 관광단지에서 바닷가로 나가면 시랑대가 있다. 넘실대는 쪽빛 바다와 맞닿은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다. 그러나 해운대에서 기장으로 이어지는 도로변에는 ‘해동용궁사’ 표지판만 요란하다. 큰 도로에서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길이 끝나는 곳에 2개의 주차장이 있다. 오른쪽 주차장에 차를 대면 그제야 ‘시랑대’ 표지판이 보인다.
낮은 언덕 대나무 오솔길을 통과해 곧장 가면 사찰 입구다. 시랑대는 해동용궁사와 바로 붙어 있지만 동선은 분리돼 있다. 사찰 뒤편 담벼락을 따라 가면 쉬운데,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철문이 막고 있다. 시랑대로 가는 길은 오솔길을 통과하기 직전 오른편 철조망 사이에 난 쪽문으로 연결된다.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만 개방한다고 적혀 있다. 이곳에서 시랑대 입구까지는 불과 200m 남짓하다. 부산 해안을 연결하는 ‘갈맷길’ 1-2코스이고 기장 8경이라 자랑하면서 이렇게 찾기가 힘들다.
나무 계단을 따라 해안으로 내려가다 중간쯤 돌출된 바위에 ‘시랑대(侍郞臺)'라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조선 영조 9년(1733) 시랑직(이조 참의)을 지낸 권적이 기장 현감으로 부임해 풍류를 즐기며 새겼다고 한다. ‘시랑대’ 말고도 여러 글자가 새겨져 있지만 훼손되고 나뭇가지에 가려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경치 좋은 계곡의 암반마다 남은 흔적과 비슷하다. 창창대해를 시제 삼아 글을 짓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안주 삼아 술잔을 주고받고 노랫가락까지 곁들였을 테니 그 멋스러움을 어디에 비유할까. 지체 높은 어르신이 자리를 뜨면 당대의 ‘놀쇠’들이 또 모였을 듯하다.
시랑대는 원앙대 또는 비오포라고도 불렸다. 원앙처럼 반짝이는 깃털을 가진 비오리가 출렁거리는 파도를 타거나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것을 비유한 명칭이다. 계단을 따라 바위 끝으로 나가면 데크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억겁의 세월 풍파의 흔적이 주름으로 새겨진 하얀 암반 끝은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짙푸른 바다와 연결된다. 가슴이 탁 트이는 기장의 원조 놀이터지만 존재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고 찾는 이도 드물다.
반면 바로 옆 해동용궁사는 전국 바닷가 사찰 중에서 가장 ‘핫한’ 절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1974년 창건했으니 불과 50년이 안 된 사찰이다. 중생의 고통을 들어주는 관음도량이라 자랑하지만, 입구부터 전통 사찰과는 차이가 있다. 십이지신상이 줄지어 선 담장을 지나면 거대한 석탑이 나타난다. 형식은 불탑인데 명칭은 교통안전탑이다. 정체가 모호한데 해상안전을 기원하는 조형물이겠거니 여긴다.
일주문을 지나 작은 터널을 통과하고, 잘 다듬어진 돌계단을 내려가면 암반 위에 올라선 여러 전각이 눈에 들어온다. 기와 지붕 건물 앞으로 갯바위가 순하게 가지를 뻗고, 그사이로 속이 훤히 비치는 투명한 바닷물이 찰랑거린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이라 자랑하니 불자뿐만 아니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시랑대는 잊히고 절집만 남은 격이다. 그 가치를 먼저 알아본 스님의 혜안을 칭찬해야 할지 비난해야 할지 난감하다.
시랑대와 쌍을 이루는 오랑대는 해동용궁사에서 약 700m 위쪽 바닷가에 있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걸어갈 수 있는 거리다. 오랑(五郞)은 다섯 명의 남자를 일컫는다. 옛날 기장으로 유배 온 친구를 만나러 다섯 선비가 이곳에 왔다가 풍광 좋은 이곳 바닷가에서 풍류를 즐겼다는 설이 전해진다.
친구들끼리 갯바위에 앉아 술잔을 나누며 담소를 즐겼을 테니 다소 격식을 차려야 했던 시랑대에 비하면 한결 편안한 곳이다. 실제 오랑대는 접근도 편리하고 지형도 순탄하다. 주변 해안은 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해안 산책로 곳곳에 벤치가 놓여 있다. 초록빛 바다에는 따스한 봄기운이 번지고, 갯바위 주변 속이 훤히 비치는 물속에선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생생하다.
오랑대 뒤에도 해광사라는 사찰이 있다. 오랑대의 뾰족한 바위 봉우리에 탑 모양의 용왕단을 세우고 내부에 작은 기도 공간을 마련했다. 어촌 주민들의 풍요와 안전을 기원하는 곳이었을 텐데 지금은 불교와 기복신앙이 묘하게 결합된 형식이다.
오랑대 바로 위쪽은 기장에서 가장 큰 대변항이다. 포구 앞 기장에서 가장 큰 섬이라는 죽도 입구에 노천 횟집이 즐비하고, 배에서 싱싱한 멸치를 부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바다의 생기가 넘치는 곳이다. 대변항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면 도시의 번잡함은 사라지고 풍광은 한결 수수해진다. 대변에서 죽성리에 이르는 해안도로는 좁고 구불구불해 불편하기 짝이 없는데, 바닷가 언덕배기에는 빈틈없이 대형 카페가 자리 잡았다.
죽성리는 드라마 ‘드림(2009년)’ 촬영장 덕분에 이름을 알린 작은 어촌마을이다. 갯바위에 세운 ‘죽성성당’이 사진 명소로 입소문을 타면서다. 주변 바다가 얕고 투명해 물속 해초가 일렁거리는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세트장에서 해안을 따라 조금만 걸으면 자그마한 봉우리 앞에 황학대라는 표지가 세워져 있다. 바다로 돌출된 누런 바위가 학이 나래를 펼친 모양과 흡사해 붙은 이름이다. 크고 화려한 요즘 전망대에 비하면 보잘것없지만 작은 물건이라도 소중히 여기고 의미를 부여한 선인들의 체취가 느껴진다. 계단을 오르면 고산 윤선도 동상과 시비가 세워져 있다. 고산은 1618년 이곳 죽성에 유배돼 약 5년간 머물면서 29수의 시문을 남겼다고 한다.
마을 중간의 ‘죽성리 해송’은 주민들에게 수호신 같은 존재다. 400년 가까이 된 아름드리 소나무 5그루가 마치 한 몸처럼 멋들어진 수형을 자랑한다. 의지하고 도우며 더 크게 성장한 지혜에 절로 감탄하게 된다. 주민들은 이 나무를 고된 시련 속에서도 큰 학자로 성장한 고산의 삶에 비유한다. 원래 6그루였지만 태풍 매미 때 한 그루가 스러지고 말았다. 밑동의 갈라진 나무 틈에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집이 들어앉았다. 가지가 다치지 않게 새 둥지처럼 조심스럽게 끼워 놓은 모양새다. 이 나무를 얼마나 아끼는지, 또 얼마나 의지하는지 주민들의 마음가짐이 보인다.
죽성리에서 다시 해안을 따라 올라가면 기장이 자랑하는 2개의 해변이 이어진다. 일광해수욕장은 고려시대 정몽주를 비롯한 인사들이 유람했던 절경으로 알려졌다. 1953년 발표된 오영수의 단편소설 ‘갯마을’의 배경이자, 1965년 동명의 영화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명소라는 의미다. 해변 한가운데에 세워 놓은 뱃머리 모양 조형물을 중심으로 고운 모래사장이 둥글게 펼쳐진다. 기장 최북단 임랑해수욕장은 아름다운 송림(松林)과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파랑(波浪)에서 한 글자씩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1㎞ 가까운 하얀 모래사장에 쪽빛 파도가 넘실거린다. 둘 모두 한적하게 바다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기장 바다는 대중교통 접근이 편리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5개의 동해선 전철역에 내려 택시를 이용하면 수월하다. 해운대에서 오시리아 관광단지로 오갈 때 ‘해운대블루라인’을 이용하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동해남부선 폐선로를 활용해 해변열차(7,000원)와 스카이캡슐(2인 3만 원)을 운영하고 있다. 열차는 블루라인파크 송정 정거장에서 해운대 어귀 미포 정거장까지 다니고, 캡슐은 중간 지점인 청사포와 미포 사이를 운행한다. 선로와 나란히 4.5㎞ 산책로가 조성돼 있어서 여유롭게 걷기 여행을 즐겨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