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가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산하 공공기관장들을 압박해 사표를 받아냈다는 이른바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의혹에 거론된 기관 8곳을 한날 압수수색했다. 3년 전 고발된 사건의 수사가 대선이 끝난 시점에서 급물살을 타면서 현 정부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서울동부지검 기업·노동전담부(부장 최형원)는 28일 한국광해광업공단, 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에너지공단, 한국지역난방공사 등 4개 회사를 압수수색했다고 밝혔다. 산업부가 사퇴 압박을 가했다는 2018년 당시 문재도(무역보험공사), 김경원(지역난방공사), 강남훈(에너지공단), 김영민(광해광업공단) 등 이명박 정부에서 이른바 '자원 외교'를 비롯한 에너지·산업 정책 담당자 출신이 사장을 맡고 있던 곳이다.
검찰은 이날 한국전력의 발전 자회사 4곳도 압수수색했다. 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중부발전 본사다. 산업부가 2017년 9월 장재원(남동발전)·윤종근(남부발전)·정하황(서부발전)·정창길(중부발전) 등 당시 사장들을 종용해 임기가 남았음에도 사표를 제출하도록 했다는 진술을 입증하기 위한 강제수사로 풀이된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처음 제기된 시점은 3년 전이다. 2019년 1월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산업부가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탈원전 정책 기조와 맞지 않는 산하 발전사 사장들을 교체하려 불법적으로 사표를 받아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백운규 전 장관과 이인호 전 차관 등 4명을 직권남용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고발했다. 당시 자유한국당이 공개한 진상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해 9월 산업부 담당 국장이 광화문 소재 호텔로 4개 발전사 사장들을 각각 불러내 사표를 요구했고 그 배후로 산업부 장·차관이 지목됐다.
자유한국당은 이후 산업부가 이듬해에도 해외자원 개발사업과 관련된 산하 기관 4곳의 기관장을 압박해 사표를 받아 수리했다고 주장하며 백 전 장관 등을 검찰에 추가 고발했다. 진상조사단장이었던 김도읍 의원은 "산업부 관계자에게 확인한 바, 공공기관 인사 업무는 산업부 운영지원과장이 장·차관의 지시를 받아 해당 실장 및 국장에게 분배해 사표를 받는 구조였다"고 주장했다.
고발장을 접수한 검찰은 2019년 5월 장재원 전 사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하는 등 4개 발전사 전 사장을 조사했지만 이후 수사는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하지만 검찰은 이달 25일 산업부를 전격 압수수색한 데 이어 사흘 만에 관련 기관 8곳을 한꺼번에 압수수색하며 수사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이런 태세 전환의 배경을 두고 여러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검찰은 지난 1월 대법원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에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을 계기로 수사를 재개했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