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을 가득 채운 영화인들은 일제히 일어나 박수 대신 양손을 들어 손목을 회전시키며 흔들었다. 영화 ‘코다’의 트로이 코처(54)가 남우조연상 수상자로 호명된 직후였다. 적막한 듯하지만 뜨거운 환호였다. ‘코다’에서 10대 소녀 루비(에밀리아 존스)가 노래 부를 때 농인 가족들이 보인 열정적인 행동이었다. ‘코다’가 각색상과 작품상을 추가로 가져가자 돌비극장 객석은 또다시 흔들리는 손으로 출렁거렸다. 제94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은 고요한 환호만으로도 마음을 움직이기 충분했다.
이날 시상식의 주인공인 ‘코다’는 농인 부모와 오빠를 둔 루비가 중심인 영화다. 루비는 음악에 남다른 소질을 지녔다. 학교 음악 선생님은 루비의 재능을 발견하고 연마시킨다. 좀더 나은 교육을 위해 루비를 명문 버클리 음대로 인도하려 한다. 하지만 가족은 루비 없이는 생계를 지속하기 어렵다. 가족 중 유일한 청인인 루비가 있어야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 루비는 가족과 꿈 사이에서 고뇌한다. 카메라는 농인 자녀(CODA·Child of Deaf Adults)라는 특수한 환경에 놓인 루비의 성장기를 따스한 시선으로 전한다.
‘코다’는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2014)를 바탕으로 새롭게 만든 영화다. 프랑스 농촌 가족의 이야기를 미국 어촌 가족의 사연으로 바꿨다. 청인 배우가 농인을 연기한 원작과 달리 농인 배우들이 농인 역할을 모두 소화했다. ‘코다’의 제작자 패트릭 워시버거는 지난 18일 보도된 미국 연예매체 할리우드리포터와의 인터뷰에서 “지금 세계에서 그렇게 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밝혔다. 시대 조류에 맞게 농인은 농인 배우가 연기해야 옳다는 의미였다. ‘코다’는 각본 40%가량이 수어로 이뤄져 있다.
농인 배우로선 1987년 ‘작은 신의 아이들’로 오스카 배우상(여우주연상)을 첫 수상한 말리 매트린(57)이 중심 역할을 했다. 영화 제작 초기에 합류해 션 헤이더 감독 등을 도왔다. 워시버거는 “만약 농인 배우로 모두 캐스팅하겠다는 계획이 없었다면 매트린은 합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결과적으로 농인 배우들이 주요 역할을 맡은 영화로 아카데미상 작품상을 첫 수상했다. 코처는 매트린 이후 오스카 배우상을 수상하는 두 번째 농인 배우(남자 배우로는 최초)가 됐다.
헤이더 감독이 어린 시절을 보낸 메사추세츠주 글로체스터에서 촬영했다. 새벽 4시부터 촬영하는 강행군 끝에 완성됐다. 후반 작업 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시작돼 어려움을 겪었다. 헤이더 감독은 캐나다에 있는 후반 작업실에 한동안 갈 수 없었다. 막판엔 제작비가 쪼들려 필요한 음원을 일부 구입하지 못했다. 하지만 첫선을 보인 선댄스영화제에서부터 미국 영화 부문 심사위원대상, 관객상 등을 수상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할리우드리포터가 가장 자랑스러운 점을 묻자 워시버거는 이렇게 답했다. “모든 점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이 영화는 정직해요. 조작된 게 없습니다.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저는 웃고는 합니다. 울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