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가해자인 현직 부장검사의 형사처벌 여부를 놓고 검찰이 사건을 직접 조사했던 경찰 판단을 180도 뒤집고 불기소 처분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당사자들의 진술과 물적 증거 등을 토대로 가해자의 중과실 행위가 사고 원인이라고 결론 내리고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경찰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보고 공소권 없음 처리했다.
4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수도권 검찰청 소속 A부장검사는 지난해 7월 8일 오후 6시 40분쯤 서울 여의도에서 잠실 방향 올림픽대로에서 차량 충돌사고를 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A부장검사가 몰던 렉스턴 차량은 4차로에서 5차로로 진입하기 위해 차로 사이에 있는 백색 안전지대를 가로질렀고, 이 과정에서 5차로를 주행 중이던 피해자의 볼보 차량과 충돌했다.
사고 당일 피해자와 A부장검사는 상해 피해에 대해선 합의를 보지 못했으며, 차량 훼손에 대한 보험 처리만 한 후 헤어졌다. 하지만 다음 날인 7월 9일 피해자가 경찰서를 찾아가 가해자의 교통법규 위반을 주장하면서 A부장검사에 대한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피해자는 자신의 차량 블랙박스와 함께 전치 2주 진단서를 경찰에 제출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가해자가 12가지 중과실에 포함되는 행위로 사고를 내서 피해자가 다쳤다면, 종합보험 처리를 했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A부장검사 사건의 쟁점인 안전지대 침범의 경우 12대 중과실 중 첫 번째 항목인 '지시 위반' 행위에 해당한다.
경찰은 피해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과 당사자 진술 등을 바탕으로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가해자의 안전지대 침범이었다고 판단하고 같은 해 8월 9일 A부장검사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상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부장검사에게는 교통 법규 위반(15점)과 인명 피해(5점)에 대한 벌점 20점도 함께 부과됐다.
그러나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한 달여간 조사 끝에 경찰과 정반대 결론을 내렸다. 형사처벌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고 9월 24일 A부장검사를 공소권 없음 불기소 처분한 것이다. ①사고 지점이 안전지대 바깥이었고 ②따라서 안전지대 침범을 사고의 직접 원인으로 볼 수 없다는 게 검찰 논리였다.
검찰은 이 같은 처분이 경찰 조사에서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 수사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A부장검사는 경찰에 사고 지점 특정을 위한 서면조사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에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직접 도로교통공단에 사고 분석을 의뢰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주장하는 도로교통공단 회신은 "사고 지점이 안전지대를 벗어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가해자가 안전지대를 침범해 진행했어도, 사고 지점이 안전지대 바깥이라면 이를 안전지대 침범에 의한 사고로 보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례들을 근거로 A부장검사를 공소권 없음 처리했다. 경찰이 수사를 잘못했고 무리하게 송치했다는 것이다.
뒤늦게 A부장검사에 대한 검찰의 처분 결과를 알게 된 경찰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블랙박스상 사고 당사자들의 차량 위치가 특정된 데다, 해당 사고는 안전지대 침범으로 인해 발생한 사고라는 게 명확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정식으로 사고 지점 관련 서면조사를 요청했는지 불확실할뿐더러, 사건 관련 사실관계가 명확하다고 조사된 상황에서 피의자 요청을 경찰이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당시 경찰 분석을 미흡했다고 판단해 검찰이 보완 수사 명령을 내렸다면 추가 조사를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특히 당시 A부장검사 사건은 매우 신중하게 처리했다고 강조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사자 진술과 물적 증거, 사건 정황 등 세 가지 요건 중 하나라도 어긋나는 부분이 있으면 사건을 쉽게 송치하지 않는다"며 "조사 당시 피의자가 부장검사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더욱 철저히 조사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