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과정에서 국민연금 개혁은 모든 후보들이 동의한 과제 중 하나였다. 저출산 고령화가 빨리 진행되는 상황에서 돈 낼 청년은 줄고 돈 받을 노인이 늘어난다면 결국 국민연금 지급액이 줄어들 수밖에 없어서다. '국민연금 고갈론'은 잊혀질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레퍼토리 중 하나다. 가장 최근에 나온 2018년 제4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 결과를 보면 국민연금은 2042년 적자를 내기 시작해 2057년 기금이 바닥날 것으로 전망됐다. 대선을 거치며 주요 후보들이 모두 국민연금 개혁을 언급한 이유다.
하지만 방향은 아직 모호하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 시절 국민연금 개혁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연금개혁은 굉장히 복잡한 문제이고 시간이 오래 걸려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고, 초당적으로 해야 하는 문제다"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 때문인지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만들겠다는 정도 이외엔 확실한 내용이 없다. 그래서 국민연금 문제를 오래 연구해온 정해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공적연금연구센터장에게 개혁 방향을 물었다.
정 센터장은 '보험료율 인상', 즉 국민들이 결국 더 내야 한다는 쪽에 힘을 실었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우리나라 보험료율이 너무 낮다. 보험료율은 소득 중 국민연금으로 내는 돈의 비율을 의미하는데, 한국은 1998년 이후 24년째 9%를 유지 중이다. 독일(18.7%), 일본(18.3%) 등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국민연금 재정이 위태롭다고 소득대체율을 마냥 끌어내릴 순 없어서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정부는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소득대체율을 40%까지 떨어뜨리기로 했다. 소득대체율이 60~70% 수준일 때 가입한 현재 수급자의 가입기간별 월평균 연금액은 △20년 이상 94만 원 △10년 이상 55만7,000원 수준이다. 소득대체율이 40% 아래로 내려가면, MZ세대가 받을 연금액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 센터장은 "소득대체율을 더 낮추면 '용돈연금'으로 전락할 뿐 아니라, 기초연금 등 다른 연금을 올려야 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은 보험료율 인상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보험료율을 높이는 것의 문제점은 '세대 간 공정' 논란이다. 미래세대가 더 많은 돈을, 더 오래 내야 해서다. 하지만 정 센터장은 전체 국민의 복지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금 태어나는 아이들은 경제활동인구가 되기 전에 앞 세대의 지출을 통해 복지 혜택을 누린다"면서 "연금제도를 복지제도에서 떼지 말고, 세대 간 재분배의 방법이라고 보면 불공정하다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 센터장은 결국 문제는 보험료율의 인상 폭과 속도라 봤다. 마침 윤 당선인이 '공적연금개혁위원회' 설치를 공약으로 제시한 만큼, 여기서 구체적 논의를 할 필요가 있다. 그는 "2023년에 제5차 연금재정추계 결과가 나오는 만큼, 지금 단계에서는 어떤 스케줄로 공약으로 제시한 공적연금개혁위원회나 포럼 등을 운영할지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른 한편으로 '국민연금 고갈'에 휘둘려 국민연금 무용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 센터장은 "연금 고갈 추계는 가입자 수, 소득 등 다양한 변수가 개입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그 기준을 어떻게 상정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는 결과"라며 "그런 추계는 연금 개혁 방향에 대한 참고자료일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