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종교전쟁의 서막을 열다

입력
2022.03.29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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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라그나르 로드브로크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AD 313)으로 유럽은 빠르게 기독교화했다. 근 300년 탄압에도 제국 인구의 약 10%를 점했던 기독교는 점차 유럽 정신세계를 전일적으로 지배하며 제우스와 아폴론 등 그리스 로마의 수많은 신들을 우상으로 밀쳐냈다.

9세기 유럽 기독교 세계는 게르만 신화의 원류를 계승한 북유럽 노르드 신화의 세계와 격돌했다.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를 비롯한 북유럽 데인족(바이킹)의 남하가 그 시작이었고, 그 선두에 전설의 바이킹 군주 라그나르 로드브로크(Ragnarr Lodbok, ?~ 865? )가 있었다. 덴마크, 스웨덴을 아우른 호전적 정복 군주 로드브로크는 부족을 이끌고 고대 잉글랜드 북단 노섬브리아를 시작으로 앵글로색슨 7왕국을 잇달아 침략하며 노르드-기독교 세계를 대면케 했고, 845년 3월 29일 서프랑크(프랑스) 왕국 수도 파리마저 정복했다.

전장에서 죽으면 '발할라(신의 땅)'에 들어 신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고 믿던 북유럽 바다의 지배자들은 사실상 직업 전사였다. 최고신 토르의 천둥 망치(묠니르)처럼 휘둘러대던 그들의 도끼 앞에 영지를 다투며 산산이 쪼개져 있던 유럽 왕조의 군대는 상대적으로 손쉬운 상대였다.

온난한 기후와 얼지 않는 땅, 교회와 왕실에 쌓인 금과 은은 저항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노략질은 점차 영구 정착을 위한 정복전쟁의 형태로 변모했고, 유럽 세계는 기독교 종교권력의 통일적 힘을 바탕으로 분열된 세속 권력을 통일시켜 '이교도'들의 침략에 맞서기 시작했다. 불패 신화의 로드브로크는 원정 중 폭풍우로 군사를 잃고 노섬브리아 해안에 좌초됐다가 포로로 잡혀 처형됐고, 복수에 나선 그의 신화적 아들들은 잉글랜드를 넘어 파리공방전(885~86)을 벌이며 9세기 내내 기독교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다.

하지만 거꾸로 노르드 신화의 세계는 더 조직화한 다수의 종교 즉 기독교 속에 점차 포섭됐고, 11세기 무렵엔 이미 최북단 아이슬란드에까지 십자가가 세워졌다.

최윤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