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역에 포탄을 쏘아댔던 러시아군이 갑자기 “핵심 목표는 동부 돈바스”라며 방향을 선회했다. 이를 두고 전쟁 장기화로 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이 가중된 결과란 분석이다. 시간이 갈수록 러시아 내부의 불만이 커지고, 어려워진 병력수급 문제와 돈줄인 에너지 수출이 꼬인 점이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2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우크라이나 침공 2개월 차에 접어든 푸틴 대통령이 전쟁 장기화로 여러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며 전략 수정 배경을 이같이 분석했다.
우선 전쟁 장기화가 러시아 국민들에게 큰 피해를 끼치면서 내부 불만이 증폭되는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러시아의 정치분석가 타티나야 스타노바야는 “전쟁으로 인한 경제 제재 여파는 시간이 갈수록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전쟁이 길어질수록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 내부에서도 궁지에 몰린다”고 진단했다. 거의 모든 국제 기업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접으면서 생필품 조달이 어려워진 데다, 루블화 가치 폭락과 금융 거래 제한 등으로 경제는 붕괴 직전이다. 체감 경기는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전쟁 장기화는 곧 푸틴 대통령에 대한 반발 고조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를 향해 “이 사람은 권좌에 계속 앉아 있을 수가 없다”고 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발언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내부 불만을 낮추는 방안으로 승리가 불확실한 전쟁 확대보다는 적어도 병합 가시권인 동부 돈바스 지역으로 목표를 수정했을 거라는 분석이다.
러시아군의 병력수급도 요인으로 꼽힌다.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에 부딪힌 러시아군은 이미 많은 병력을 잃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등 서방은 러시아군이 우크라나를 침공한 지 한 달여 만에 7,000~1만5,000여 명의 병력을 잃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군의 사기저하로 이어져 푸틴 대통령이 전선을 넓히고 싶어도 넓힐 수 없게 만드는 주 요인이다. 미국 버니지아주 알링턴 소재 비영리 국방연구단체인 해군연구소(CNA)의 마이클 코프만 연구원은 “대규모 병력 손실은 군 사기 저하를 일으켜, 지휘관이 명령을 밀고 나아가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문제는 전쟁 지속능력을 결정하는 추가 징집에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 정부는 내달 1일부터 신규로 군인들을 징집하는데,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어 모병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참전중인 러시아군 병사 가운데 복무기간이 지난 경우, 그들을 군대에 더 붙잡아 둘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태라고 WP는 전했다.
러시아의 가장 큰 자금줄인 에너지 산업의 타격도 푸틴 대통령의 전략 변화를 부른 요인으로 지목된다. 소련 붕괴 이후부터 현재, 미래까지 러시아의 경제 버팀목은 에너지 수출이다. 러시아는 유럽 외에도 중국ㆍ인도 등지에 석유ㆍ가스 등 에너지 자원을 판매해 왔다. 실제 침공 이전부터 국내총샌산(GDP)은 줄어들고 실업률은 상승하는 추세였던 러시아로서는 에너지 판매를 통해 국가부채를 줄여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전쟁을 강행하자 서방은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제재를 가했고, 이에 더해 러시아에 대한 자원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까지 병행하고 있다. 앞서 유럽연합(EU) 정상들이 25일 회담에서 러시아에 대한 가스 의존도를 줄이는 대신, 27개 회원국이 가스·수소·액화천연가스를 러시아 이외 시장에서 공동구매하기로 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당장 전쟁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것은 물론, 전쟁 이후 러시아 경제를 고민해야 하는 푸틴 대통령에게 이런 서방의 움직임은 큰 압박으로 작용, 전장 축소로 연결됐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