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어정쩡한 중국의 최종 선택은

입력
2022.03.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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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 중국이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어느 한쪽과도 관계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어정쩡한 중간지대'를 유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중국의 국가전략적 측면에서 볼 때 '중립'은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다. 특히 사태가 악화될 경우 중국은 결국 러시아 편으로 더 기울게 될 것이다. 신냉전적 구도가 더욱 명확해지고 있는 판국에서 중국은 정치이념적으로 아군인 러시아를 선택하는 것이 장기적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러시아를 중국이 선택한다는 것은 손익계산 측면에서 보면 의아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에 가장 중요한 대외적 과제는 미중 경쟁이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설사 중국이 미국에 도움을 주는 일을 하더라도 큰 틀에서 미중 경쟁의 근본적 구도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 본다.

중국의 이러한 판단은 미중 경쟁이 2018년 무역전쟁으로 본격화됐을 때, 중국이 미국에 실사단을 파견해 현지조사를 실시해 내린 결론이기도 하다. 당시 중국 언론인, 학자, 관방 싱크탱크 인사들로 구성된 실사단은 미국 의회 관계자, 대학, 싱크탱크, 언론인, 전직 정부 관리 등을 두루 접촉했다. 실사단은 한 팀만 파견된 것이 아니라 복수였으며 미국의 다양한 도시를 방문했다.

기본적으로 중국은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와의 협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중국은 세계를 △유럽 △ 한중일 3국 △동남아 지역 등 3개 '전선(戰線)'으로 나누었다.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와의 협력을 통해 미국을 이기겠다는 것이다.

이 중 동남아는 사실상 중국 경제권으로 기울었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동맹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공조 공간이 크고, 인센티브를 제시하면 중국 편으로 견인할 수 있다고 본다. 시진핑 주석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축하 전화를 하면서 한중이 "떼려야 뗄 수 없는 파트너"(分不開的合作伙伴)라고 지경학을 환기하면서, 대뜸 '공급망 안정 협력'을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글로벌 시장과 첨단 기술 공급망이 결국 미중 경쟁의 핵심 자산이 될 것이라 본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중국이 미러 사이에서 어떠한 포지셔닝을 취할지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다. 중국이 우려하는 것은 유럽-러시아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그 불똥이 유럽-중국 관계에도 튀어 무역과 제재, 그리고 공급망에 악영향을 미칠 경우이다. 시진핑 주석이 유럽 국가 지도자들과 요즘 화상 정상회의에 집중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또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유럽국가들에 '인지분열'(認知分裂)을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딴맘 먹지 말고 중국과의 경제적 이익에만 집중하라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애초에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이견을 보였던 미국과 유럽이 갈수록 뭉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중국의 전략적 셈법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미중 갈등의 근본적 구도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이 부장은 "국제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중러 간 전면적인 전략 협력은 강화될 수밖에 없다"(不论国际形势如何变化, 中俄之间的全面战略协作只会加强)고 했다. 중국 외교관의 말을 믿지 못한다면 중국의 전략적 입지를 직시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금의 상황을 '신냉전 구도가 새롭게 형성되는 환경'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 입에서 '신냉전'이란 말이 언급된 것은 처음이지 않나 싶다. 이는 달리 보자면 한국의 판단이 늦었다는 뜻이다. 늦어도 많이 늦었다. 후일 역사책은 이 대목을 다시 반문할 것이다.


이성현 조지 H.W. 부시 미·중관계기금회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