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북한발(發) ‘4월 핵실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로 기어이 ‘모라토리엄(발사 유예)’을 파기한 북한이 4년 전 폭파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마저 단기간에 복구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진 탓이다. 남측 신구 권력을 싸잡아 비난하며 7차 핵실험의 명분을 쌓기 위한 공세 수위도 점차 끌어올리고 있다.
27일 북한선전매체들은 일제히 대남 총공세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문재인 정부, 대상도 가리지 않았다. 특히 윤 당선인을 향해서는 실명 언급과 함께 원색적 비난을 쏟아냈다. 우리민족끼리는 “대북 선제타격 등을 거리낌 없이 줴쳐대며(지껄이며) 물인지 불인지 모르고 헤덤비는 대결병자 윤석열이 대통령 벙거지를 뒤집어 쓰는 것부터 남조선에 최대의 재앙이 들이닥칠 징조”라고 했다. 통일의 메아리 역시 윤 당선인을 ‘화근덩어리’, ‘얼뜨기’로 지칭했다. 강경한 대북정책을 표방한 윤 당선인에게 불만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이다.
대외용 주간지 통일신보는 현 정부도 겨눴다. 앞서 11일 통일부가 발간한 ‘2022 통일백서’를 겨냥해 “책임 회피로 일관돼 있다. 남조선 당국이 아무리 모지름(안간힘)을 써도 북남(남북) 관계 파탄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미연합군사연습(한미훈련) 폐지 등 북측의 요구를 끝내 외면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역력히 묻어난다.
북한이 남측 정치권에 기대 자체를 접은 건 24일 ICBM 발사 이후 핵실험 등 추가 도발 명분을 축적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여기에 국제사회의 제재 부담도 덜었다. 25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또다시 대북 규탄성명 도출에 실패했다. 이에 북한 외무성은 이튿날 곧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4년 전 첫 방중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대면한 사실을 끄집어냈다. 뒷배인 중국과 우호 관계를 앞세워 고강도 도발을 북중러 대 한미일의 진영 대결로 몰아가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미 핵실험 재개에 필요한 실무적 조치는 깊숙이 진행됐다. 핵도발의 진원 풍계리 핵실험장의 3번 갱도를 초고속으로 복구하는 정황이 한미 정보당국에 포착된 것이다. 2018년 5월 스스로 폭파한 갱도 입구를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까지 최단 거리 ‘지름길’을 새로 뚫어 핵실험 준비를 최대한 빨리 마치는 방식이다. 3번 갱도에선 아직 핵실험을 실시한 적이 없다.
북한의 구상이 맞아떨어지면 김일성 생일(4월 15일ㆍ태양절) 110주년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4월 25일) 90주년에 맞춘, 4월 핵실험도 충분히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한 차례 시험발사에 실패한 ICBM 추가 도발보다 핵실험 시기를 앞당겨 한미 압박 강도를 최고조로 높이고, ‘핵무력 완성’을 재차 선언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는다. 정부 고위 관계자도 “북한이 속도를 내면 늦어도 두 달, 빠르면 4월 중순에 7차 핵실험을 감행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