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반도의 전설, 마산드라 와이너리

입력
2022.03.29 04:30
16면

편집자주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격주 화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2018년 소펙사(Sopexaㆍ프랑스 농수산공사) 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 부문 우승자인 출판사 시대의창 김성실 대표가 씁니다.


얼마 전 우크라이나의 와이너리들이 와인병을 이용해 화염병(molotov cocktail)을 만들어 시민군에 제공한다는 뉴스를 접했다. 널리 알려진 각국의 와이너리들이 우크라이나에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우리나라에서도 우크라이나 와인을 수입하는 회사(㈜러스코)가 후원 활동을 하기에, 필자도 와인을 주문했다. 저간의 사정이야 어떠하든, 학살과 다를 바 없는 전쟁이 지구에서 사라지기를 빌면서.


우크라의 유산 ‘마산드라 와이너리’

2015년이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크림반도의 '마산드라 와이너리'의 책임자를 횡령 혐의로 기소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전 총리가 마산드라 와이너리를 방문한 것이 발단이었다.

두 정상은 그곳에 보관된 올드 빈티지 와인을 마셨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올드 빈티지 와인이 있는 선반에서 1891년산 와인을 발견하고는 맛을 보고 싶다고 했단다. 책임자는 와인병 마개를 열어 이들에게 대접했고, 이 장면이 러시아 국영 TV를 통해 전파를 탔다.

마산드라 와이너리는 러시아제국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가 크림반도 남쪽의 해안 도시 얄타와 인접한 마산드라 마을에 건설했다. '차르의 와이너리'답게 규모가 그야말로 어마어마하다. 와인을 보관하는 150m 길이의 지하 터널이 7개나 있다. 터널은 와인을 보관하기에 최적의 조건인 연중 평균온도 섭씨 12~14도에 습도 90%를 유지한다.

터널 안에는 약 100만 병에 달하는 와인이 보관돼 있다. 러시아제국 시절 유럽 각지에서 사 모은 오래된 고급 빈티지 와인도 많아, 스페인산 1775년 빈티지 셰리 와인 한 병이 2001년 소더비 경매에서 3만2,000파운드(약 5,000만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셀러 책임자인 야니나 파블렌코는 2014년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합병될 때, 친러시아계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이미 우크라이나 검찰이 반역 혐의로 기소한 인물이다. 그가 푸틴과 베를루스코니에게 240년 된 셰리 와인까지 대접했다는 목격자의 증언이 나왔다. 우크나이나에서는 이 와인이 9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그를 기소한 우크라이나 검사 나자르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와인은 마산드라 셀러와 크림반도의 유산일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국민 전체의 유산이다."


러시아로 넘어간 마산드라 와인

우크라이나는 1958년 크림반도를 양도받은 뒤부터 마산드라 와이너리를 국가가 직접 운영했다. 국영 와이너리였던 셈이다. 60여 년을 관리한 곳이 하루아침에 러시아에 넘어갔으니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눈 뜨고 코 베인 격이다.

크림반도는 말하자면, 새옹지마의 땅이다. 역사를 잠깐만 들여다보아도 온통 ‘땅 주인’이 바뀌었다는 이야기 일색이다. 13세기에는 몽골제국의 킵차크한국이 이 땅을 지배했다. 15세기 초에는 킵차크한국에서 독립한 크림한국이, 15세기 말에는 오스만튀르크가 반도를 차지했다. 그러다가 1783년부터 러시아제국이 크림반도의 주인이 되었다.

반도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17년 제정 러시아에서 일어난 10월 혁명은 반도의 운명을 다시 바꾼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 15개 공화국이 가입해 소련이라는 거대 국가가 탄생했다. 소련의 1대 공산당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에 이어 2대 서기장에 오른 니카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쇼프가 195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넘겨주었다.

문제는 크림반도가 우크라이나와는 동질성이 적다는 점에 있었다. 크림반도의 인구 구성을 보면 러시아계가 약 60%, 우크라이나계가 약 25%, 나머지가 타타르계와 기타 민족이다.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쓰고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 인구가 더 많다. 문화 역시 러시아에 가까워 ‘우크라이나 속의 러시아’로 불렸을 정도다. 우크라이나에서도 크림반도에 자치권을 준 데에는 이러한 까닭이 있었다.

하지만 잘못 끼운 첫 단추는 ‘연쇄 비극’을 낳고 말았다. 크림자치공화국은 친유럽파와 친러시아파로 분열됐다. 크림의 위기였다. 정치적 혼란을 틈타 ‘리틀 그린맨’이라 불리는 휘장 없는 푸른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크림반도의 여러 기관을 점령했다. 푸틴 대통령이 끝내 부인했지만 이들은 러시아 군인으로 밝혀졌다. 결국 크림반도에 친러파 지도자가 선출됐고, 2014년 3월 16일에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투표 결과 96.7%가 러시아와의 합병에 찬성했다. 3월 21일, 크림자치공화국은 러시아에 편입됐다.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편입되자 마산드라 와이너리 역시 러시아로 넘어갔다. 푸틴 대통령이 손님을 데리고 이곳에 마음대로 드나든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알다시피 아직 끝을 맺지 못했다. 2월 24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전쟁이 벌어졌다.


톨스토이의 별장이 세워진 곳, 얄타와 와인의 상관 관계

다시 와인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런데, 제정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는 왜 크림반도의 얄타 부근 마산드라 마을에 와이너리를 세웠을까.

가장 큰 직접적인 동기는 ‘보론초프’라는 백작이 이곳에 유럽산 포도나무를 재배해 성공적으로 와인을 양조한 선례가 있었다는 점이다. 게다가 얄타는 휴양하기에 좋은 도시였다. 선왕 때부터 이용한 황실의 여름 별장과도 가까웠다. 톨스토이도 이곳에 여름 별장을 지었고, 안톤 체호프도 여러 해 동안 이곳에 머무르며 글을 썼다고 한다. 동토의 땅 러시아 본토와는 달리 얄타는 연중 300일이 맑고 따뜻한 지중해성 기후인 데다 경관까지 빼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곳은 포도나무를 재배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와이너리를 세우기에도 적격이었다. 1894년에 첫 삽을 뜨고, 1897년 마산드라 와이너리가 완공됐다. 황제는 레프 골리친(Lev Golitsyn)이라는 인물에게 와이너리의 건립부터 관리와 경영을 모두 맡겼다.

골리친은 마산드라 와이너리가 세워지기 전부터 크림반도의 테루아르가 포도재배에 알맞다는 사실을 알고는 포도나무 품종을 실험 재배했다. 그는 또 프랑스 상파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샴페인과 똑같은 방식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양조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한마디로 실력 있는 와인 메이커였다. 그의 이름을 딴 스파클링 와인이 러시아어로 샴페인을 뜻하는 ‘샴판스코예(Shampanskoye)’란 명칭으로 지금도 러시아에서 생산된다.

골리친은 와인 수집가이기도 했다. 그는 유럽 각지에서 생산된 18~20세기의 와인을 사 모았다. 그가 모은 와인이 5만 병에 달했는데, 말년에는 자신이 수집한 와인을 마산드라 와이너리에 기증했다.

마산드라 와이너리는 크림반도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자부심이었다. 제국 시절에는 왕족과 귀족의 사랑을 받았다. 소련 시절에는 공산당 간부들도 이곳을 각별하게 여겼다. 스탈린이 특별법을 만들어 와이너리를 보호했을 정도다. ‘어머니’를 쓴 작가 막심 고리키도 이곳에 방문해 서명을 남겼다.

한편, 2차 세계대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1941년 11월 독일 나치 군대가 러시아 본토로 진격하려고 크림반도에 상륙했다.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마산드라 와이너리는 나치에 와인을 빼앗길까 염려되어 와인을 피란시키기로 했다. 무려 약 6만 병의 와인과 120만 리터의 오크통 와인을 육로와 해로를 통해 조지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으로 이송한 것이다. 다만 갓 발효를 마친 와인은 오크 통째 모두 쏟아버렸다고 한다. 포화가 멎자 와인은, 전쟁이 지나간 자리 마산드라로 무사히 돌아왔다.


‘마산드라의 손님들’ 한반도 운명을 정한 와인

마산드라 와인은,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역사와도 관련이 있다.

1945년 2월 4일부터 11일까지 크림반도의 리바디아궁에서는 얄타회담이 열렸다. 리바디아궁은 러시아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마산드라 와이너리를 세운 니콜라이 2세가 1911년에 지은 차르의 여름 별장이다. 이곳에서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서기장,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사이에 오간 회담은 동쪽 멀리 떨어진 또 다른 반도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이때 이들이 한반도의 신탁통치안을 결정했다.

정상들은 식사할 때 어김없이 술을 곁들였다. 기록에 따르면, 이들이 가장 많이 마신 술은 바로 마산드라 와이너리에서 만들었거나 보관한 고급 와인이다. 생각해보면 당시 세계를 쥐락펴락하던 이들이 몰락한 차르의 여름 별장 리바디아궁에서 몰락한 차르가 세운 와인너리의 와인을 마신 셈이다.

얄타회담에서 정상들이 마신 와인에 관한 기록이 있다. ‘마산드라의 손님들(Guests of Massandra)’이라는 문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얄타회담에 참석한 손님들에게는 마산드라 셀러의 메인 컬렉션 와인이 제공되었다. 리바디아 레드 포트(Livadia Red Port)와 화이트 뮈스카(White Muscat)다.”


다시 포도가 열리길 바라며

최근 우크라이나 언론의 발표에 따르면, 마산드라 와이너리는 2014년부터 러시아에서 관리하다가 2020년 경매로 민간에 매각되었다. 푸틴 대통령의 측근인 억만장자 코발추크가 소유한 로시야 은행의 자회사가 인수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는 불법이므로 인정할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마산드라 와이너리의 진짜 주인은 누구라는 둥, 팽팽한 소문이 퍼졌다. 그사이 두 나라의 갈등은 커졌고, 결국 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어느덧 한 달이 넘었다. 정의가 무엇인지도 모를 요즈음, 정의가 이긴다는 소리 따위는 덧없기만 하다. 다만, 필자가 밥을 먹고 지하철을 타고 글을 쓰는 동안에도 그곳에는 포탄이 떨어지고 불길이 타오르고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 테다. 동쪽의 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서쪽의 두 나라의 운명을 어쩌진 못하겠으나 다만, 포성이 그치고 전쟁이 끝나기를 빈다. 전쟁의 상흔을 씻어낸 빨래가 평화롭게 나부끼는 우크라이나의 하늘 아래, 다시 포도가 열리고 와인이 익어 가는 향이 퍼지기를 다만, 빈다.

시대의창 대표ㆍ와인어드바이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