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 간 '장그래'가 우크라이나에서 받은 메시지

입력
2022.03.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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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트레이서'  임시완
 속물 회계사서 비리 척결 국세청 팀장으로 
 "장그래가 수모 겪고 사회성 '만렙', 능구렁이로"
장르물에서 빛나는 아이돌 출신 배우 
 신병교육대 조교로 병역... "취미는 복싱"
 우크라에 '착한 노쇼'... "우크라인 위해 꼭 쓰겠다고 답장 와"

꿈의 유효 기간은 2년이었다. 검정고시로 고졸 학력을 취득하고, 2014년 대기업에 비정규직으로 운 좋게 발을 들인 청년은 2016년 계약이 해지됐다. '스펙사회'의 유리천장은 견고했다. 그로부터 6년 뒤, '미생'인 청년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지방국세청 조세5국 팀장이 됐다. 드라마 같은 인생 역전이다. '미생'(2014)에서 장그래를 연기한 임시완(34)이 25일 종방한 드라마 '트레이서'(웨이브·MBC)에서 황동주 역을 맡아 보여준 변화다.


'미생' 비정규직서 국세청 실력파 팀장으로

"국세청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이다 보니, 세법뿐 아니라 세금 관련 처음 듣는 용어들이 많았어요. 다른 드라마 대본을 한 시간 읽었다면, 같은 분량을 보는 데 '트레이서'는 두 시간이 족히 걸렸던 것 같아요. 가령 고의 부도 관련 에피소드가 있을 때, 누가 손해를 보고 절차는 어떻게 되나 궁금해서 주위에 알아보고 촬영을 했으니까요." 종방을 계기로 화상으로 만난 임시완의 말이다.


장르물에서 왜 더 빛날까

'트레이서'에서 황동주는 임시완의 이력처럼 격변한다. 기업 돈세탁을 전문으로 맡아 유명 회계사 사무실에서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처럼 살던 그는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국세청에 들어간다. 대기업 비자금을 폭로한 후 사망한 그의 아버지의 죽음이 각성의 계기로 작용했다. 이 과정에서 임시완은 당차고 집요하게 비리 연루자를 궁지로 몰고, 국세청을 뒤흔든다.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6)에서 임시완이 감방까지 가 보여준, 차가우면서도 천연덕스러운 얼굴이 장르물의 긴장감을 돋운다.

"장그래가 갖은 수모를 겪고 사회성 '만렙'이 돼 능구렁이가 됐다고 하더군요(웃음). 로맨스 드라마엔 20~30대 청춘 배우가 보여줘야 하는 요소들이 있어요. 그런데 장르물엔 그 틀이 없죠. 그래서 제가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카메라 앞에 설수록 아이돌 출신 배우는 장르물에서 빛난다. 곱상한 외모와 달리 임시완은 군에서 신병교육대 조교로 복무했다. 그런 사내의 취미는 "복싱"이라고 한다. 임시완은 "격투기를 좋아해 복싱을 배우는 게 버킷리스트였고, 지난해부터 배우고 있다"고 했다.


"무대선 늘 긴장" '해품달' 후 10년

임시완은 그룹 제국의아이들 멤버로 2010년 가수로 데뷔했다. 특별 출연이 아닌, 이름 있는 배역을 맡아 연기를 시작한 건 2012년 방송된 드라마 '해를 품은 달'부터다. 시청률 40%를 돌파한 화제작에 출연한 뒤, 그는 배우로 승승장구했다. '적도의 남자'(2012) '미생' '타인은 지옥이다'(2019) 등의 드라마와 '변호인'(2013) '불한당' 등의 영화에 잇따라 출연하며 안방극장과 스크린에서 활약했다. 임시완은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등 연기파 배우들과 영화 '비상선언'을 찍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가수로 무대에 설 땐 끊임없이 긴장했어요. 힘들었지만, 그 경험이 제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한 건 분명해요. 다만, 제 정서엔 연기가 더 맞는 것 같아요. 어떤 일을 겪으면 자연스럽게 '아, 이걸 연기해 접목해볼까?'란 생각으로 이어지고요. 일상의 8할이 그 생각이죠."


"내 소득이 모두 내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

머리엔 연기 생각뿐이라지만, 그는 카메라 안에 갇혀 살지 않는다. 2017년 현역으로 입대한 임시완은 군 복무로 받은 월급 전액을 부대 인근 초등학교에 기부했다. 러시아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민간인 피해가 갈수록 커지는 데 따른 기부 일환으로 '착한 노쇼(No Show)' 운동에도 참여했다. 그는 7일부터 내달 4일까지 네 명이 묵을 수 있는 우크라이나 아파트 한 채를 예약하고는, 가지 않았다. 임시완은 "연기가 내 직업이고, (관심을 받아) 그렇게 얻게 된 소득이 모두 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기부 계기를 들려줬다. 내가 번 소득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니,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건강하게 사회에 (소득) 일부를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 꼭 뉴스 헤드라인을 챙겨 보는데, 우크라이나 공유 숙소 노쇼 지원 소식을 접하고 바로 참여했죠. 숙소를 예약하고 '키이우에서 당신과 시민들이 안전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냈는데, 답이 왔어요.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해 꼭 쓰겠다며 고맙다고요."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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